▲ 박두규 시인
세월호의 참담한 죽음들은 자본주의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비극적이다. 세월호는 대한민국 자체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무책임하게 속옷 바람으로 허위허위 나만 살자고 도망치는 선장은 우리 사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우리 각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수부와 같은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책임 당사자들은 우리 사회 관료들의 모습이다. 자신의 지위나 위치를 이용해 관련된 그룹 간의 이익구조 카르텔을 형성하여 기득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사는 부패한 집단 카르텔이 그들이다. 바로 우리 사회의 입법 사법 행정의 관료들 그리고 언론과 기업주와 재벌들이다.

배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수차례 반복된 방송은 우리 사회 언론들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현실을 왜곡해서 보도하여 국민들을 속이고 길들여 스스로의 인권이나 권리조차도 모르고 살게 하는 것이 언론이다. 현재의 우리 언론은 배 안의 국민들을 아무 것도 모르거나 잘못 알게 해서 잠자코 앉아서 죽게 만든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정보사회에서 언론의 왜곡된 정보는 언제든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을 수 있는 대량 학살 무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세월호는 말하고 있다.

세월호의 승객들은 국민들이다. 지도자가 도망가고 거짓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고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만을 생각하는 나라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 채 늘 희생자 목록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 속에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만히 있었고 기다리고만 있었다. 스스로 나라의 주체가 되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선거 때마저도 우리의 주권 행사라는 것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위급하면 위급한 상황일수록 가만히 실내에서 기다리라는 방송과 지도자만 믿고 우리는 정말 가만히 있었다. 470여 명 중 300여 명은 늘 그래왔다. 그리고 그만한 비율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늘 희생양이 되어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외적 상황과 조건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사실 엄정하게 보면 ‘나’의 내적 욕구가 부합하거나 방기하거나 스스로를 진정으로 성찰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기도 하다. 

나라가, 국가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고대로부터 중세, 현재까지 인류사를 통틀어 그런 국가나 나라라는 실체는 얼마나 존재했을까? 아니 있기는 있었을까? 근본적인 회의가 드는 오늘이다. 이 절망의 끝에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희망은 무엇일까? 자연의 변화는 재앙이 되었던 창조가 되었건 그 균형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진행된다고 한다.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당겨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사회, 우리 현실의 희망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너무 진부할 뿐만 아니라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겪어왔다. 선거를 잘 해서 정말 훌륭한 선장을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을 찾아내어 당선시킨다는 것은 우리 사회 구조상 매우 힘든 일이고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해도 그것은 필요조건을 채우게 될 뿐이다. 필요조건으로는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 잠깐 구름 속에서 해가 얼굴을 내민 것처럼 지나갈 뿐이다.

문제는 충분조건이다. 필요조건이 사회가 존재하는 뼈대라면 충분조건은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장기들과 근육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충분조건은 바로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다. 선장을 바꾸는 일은 어렵긴 해도 언제나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을 가르친다고 학생들 모두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인 환경과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사는 나라의 관료들과 언론과 기업주와 재벌들 같은 부패한 집단 카르텔을 저지하고 해체시킬 수 있는 사회적, 국가적인 환경과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는 참으로 불행하고 참담하고 고통스럽지만 어쩌면 기울어져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발생된 사건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스스로가 재앙을 일으켜 균형을 잡아가고 역사는 혁명이나 전쟁이나 그 무엇을 통해 사회적 삶의 균형을 스스로 유지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심한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그 불균형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된 참사라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는, 우리 국민은 이 세월호 국면을 기점으로 그 불균형을 잡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하는 시점의 극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제 38호- 2014.  5.  21 


 
박두규
시인. 현재‘한국작가회의’이사.
‘지리산人’편집인.
‘국시모 지리산사람들’대표.
‘생명평화결사’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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