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은 디투문화공동체

“여기 들어가도 돼요?”

문화의 거리에 있는 갤러리는 아무나 들어와 문화 예술을 관람하라고 만들어진 공간임에도 아이들은 문을 열고 쭈뼛거리며 묻는다. 

향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디투문화공동체는 젊은 작가들이 모여 만든 문화공동체다. 영화 만드는 사람,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디자인 하는 사람 등, 회원 8명이 모여 각자 따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디투문화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만나 지향하는 문화예술을 논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이들은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함께 편안하게 소통하기 위해 디투갤러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전시하는 공간은 줄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든다. 이 공간을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길거리에 버려진 폐자재를 이용해 한 달째 공사 중이다. 굳이 폐자재를 이용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버려진 물건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인테리어 작업을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들은 주어온 모든 물건을 활용해 꾸민다. 주어온 물건이지만 함부로 버리는 법이 없다.

▲ 길거리나 인테리어 현장에서 버려지는 문짝, 유리창, 나무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고, 닦아 구성된 공간

“요렇게 작아진 나무 정도만 버려요. 모든 재활용품을 사포로 문질러서 재활용한 것들로 이 공간을 꾸미고 있습니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버려지는 물건들을 활용해도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 “요렇게 작아진 나무 정도 버려요. ”

길거리나 인테리어 현장에서 버려지는 문짝, 유리창, 나무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고, 닦아 구성된 공간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지저분했던 벽면은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영문판이 붙여져 고풍스런 멋을 더하고, 나무판자의 색감은 깊다. 디투문화공동체는 새로 단장하는 건물이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듯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영문판이 붙여져 고풍스런 멋을 더한다.

 

정이 있는 문화공간

이들이 문화의 거리에서 디투문화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뭉친 것은 서로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만나기만 하면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활동과 예술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다가 “우리도 뭔가 해야 한다” 는 말들이 모아졌다. 서로가 꿈꾸는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들 때 디투문화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뭉쳐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강숙 작가가 문을 연 디투갤러리를 오픈할 시점이었다. 이들은 갤러리에 작품을 내거는 것을 넘어 소통하는 예술을 꿈꾼다. 이른바 공동체 소통예술이다. 사람들이 떠난 이 거리에서 그들이 상상하는 예술로 사람 냄새나는 활력을 다시 만들어내고 싶었다. 나이든 어른, 소외계층,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 폐지 줍는 어르신 등 동네에 사는 분들을 알게 됐는데도 거리에서 만나면 아는 체를 안했다. 허명수 작가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며 친근하게 다가서자 어느 날 조심스럽게 찾아오셨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와서 “이것 좀 올려 주씨요~” 해서 가봤더니 유머차가 조절이 가능한데도 조절을 못해서 허리 아픈 채로 불편하게 사용하고 계셨다. 유머차을 올려드리면서 “불편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이쪽으로 오세요” 말씀드렸더니, “요래서 애기들이 여기로 많이 오는 구나” 하며 가셨다. 이들은 공간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 간에 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복덕방 같은 문화예술 공간을 꿈꾼다.

수시로 드나들던 아이들이 어떤 날은 세차를 도와주고, 어떤 날은 청소를 도와준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그 다음에는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 “오늘 뭐 할 일 없어요?” 묻는다. 뭔가 할일이 있는 것이 관계 형성에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문화의 거리 주변 쓰레기를 줍게 하면 아이들은 신나게 달려가 줍고 온다. 이들이 내 건 ‘디투’란 뜻은 순 우리말 ‘짙게’ 뜻의 부사로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들어 짙어지는 것처럼 좀 더 깊어지고, 한걸음 더 나간다는 뜻이다. 
 

▲ 학생들이 만든 향동 지도



500년 팽나무의 기억


이들이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은 문화의 거리에서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를 하는 과정은 새롭고, 놀라웠다. 이 거리에 그 많은 역사의 상흔이 있는 줄은 몰랐다. 삼성생명 주차장 안에 있는 500년 된 팽나무 주변과 옛 순천 읍성터 에서는 역사적인 기록이 아주 많았다. 옥천서원에 김굉필이 유배 온 이야기, 여순사건 때 매산등에서 25명이 죽고 선교사들이 시체수습을 한 일, 북초등학교에서 손가락 총으로 서로를 죽이고 팽나무에 빨래줄에 널듯 시체를 널어놓은 일 등을 다시 읽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일들이지만 팽나무는 500여년 긴 세월 동안 그 모든 현장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천 사람들은 팽나무를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우리가 팽나무를 치유하면 어떨까?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생각이 또 한 사람의 말로 보태지고, 또 한 사람의 생각이 보태지며 상상은 점점 구체화됐다. 불과 1년 전에 나눈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허명수, 이강숙, 박유미 작가가 전남문화예술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제 1회 문화예술 전문기획자 양성 아카데미에 참여해 최우수 기획상을 받은 것이다.
 

앨리스의 상상력으로

 6월 14일 토요일 오전 10시를 첫 시작으로 향동 문화의 거리 초입, 500년 된 팽나무 아래에서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질 계획이다.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팽나무가 간직한 아픔의 역사를 치유하자는 것이다.  문화의 거리에 살아가는 상인, 노인, 어린이, 청소년, 다문화 가정 등이 참여해 미술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축제의 장을 만들 예정이다. 팽나무를 위로하는 흙 놀이 치유 과정, 팽나무 노래 만들기, 팽나무 물주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올해 상반기에는 문화의 거리에서 앨리스의 상상력으로 골목길을 다니며 천천히 돌아보자는 취지로 ‘천천히 걷자! 앨리(alley)스~’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팽나무, 순천향교, 옥천서원, 청수골 마을, 매산등, 한옥글방을 찾아 골목길을 돌며 한 때 번화가였던 순천읍성 곳곳을 걸으며 미술활동을 진행했다. 어느 날은 팽나무 아래에서 팽나무 그림자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난감해진 상황이 됐다. 이강숙 작가는 “그럼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그려보자”고 제안하고 아이들은 “후레쉬로 비춰서 표현해 봐요” 의견을 내서 색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모두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의력의 소산인 작품이라 그런지 이강숙 작가는 그림을 보여주는 내내 얼굴에 기쁨과 신명이 깃들어 있었다.

▲ 학생들과 사연이 깃든 그림을 보여주는 내내 이강숙 작가의 표정과 얼굴은 신명이 깃들어 있었다.

향후 디투문화공동체는 이곳 어르신들과 함께 <봄날은 온다>는 치유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걸 통해 젊어지고, 공동체가 함께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어지는 순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대전의 <공감만세>라는 공정여행사의 안내로 대전 원도심을 돌아 본 적이 있는데, 순천 문화의 거리도 디투문화공동체의 상상력과 기획에 의해 그 이상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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