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차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이멜다 씨의 이야기
1998년 12월 24일 이멜다 씨는 외국에서 만난 남편 하나만 보고 필리핀을 떠나 낯선 나라인 한국에 왔다. 따뜻한 기후에서 몇 십년 동안 살아온 그이에게 그때 한국은 참 추웠다. 이멜다 씨를 춥게 한 것은 온도만이 아니었다. 그를 대하는 시선도 너무 차가웠다.
이멜다 씨가 도착한 곳은 순천시 상사면. 그곳에는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도 많지 않았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보이는 것은 논과 산뿐이었다. 너무 외로워서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가 버스를 잘못타서 밤늦게 집에 도착했건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걱정 대신 비난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멸치볶음과 달걀부침(계란프라이)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며 자꾸 먹지 못하는 한국음식을 들이밀었다. 그것이 너무 싫었다. 살이 점점 빠지고 우울증에도 걸렸다. 심지어는 자살시도까지 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아들과 뱃속에 있는 딸아이와 함께. 3개월 뒤에 이멜다 씨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기도 했고 자식들을 아빠없는 아이들로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는 나의 힘
한국에 돌아와서 이멜다 씨는 ‘공부’에 매진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은 이럴 것이다’는 편견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자신의 고국인 필리핀에 대한 이미지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공부를 했다. 필리핀에서 영어교육과를 다녔던 그이는 방송통신대학에 영어영문학과로 편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능력시험 고급과정 시험을 앞두고 이주여성 6명과 함께 그룹스터디를 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복지관이나 이주민센터에서 한국어 고급과정을 배우고 있다.
17년 차 이멜다 씨의 꿈
이멜다 씨는 이제 한국에 온지 17년 차가 되었다. 아직 김치냉장고를 열 때 나는 냄새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필리핀에 가면 한국음식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낯설던 ‘빨리빨리’ 문화가 이제는 자신의 몸에도 배어 버려서인지 느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 질 때도 있다. 아직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 몸을 밀치는 사람들을 대하면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상황을 보며 “엄마 지금 화 많이 났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딸이 옆에 서 있어 든든하다. 17년을 한국에서 보낸 이런 저런 세월이 자신의 삶에 녹아 그녀만의 독특한 주름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삶의 경험은 이제 다른 이주여성들에게는 큰 자산이 된다.
한국어와 필리핀어,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멜다 씨는 종종 법원에서 이주여성을 위해 통역을 한다. 통역이 언어뿐만 아니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멜다 씨는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큰 힘이 된다.
앞으로 이멜다 씨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꿈은 자신이 살았던 필리핀 고향 마을에 가서 그 곳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배웠던 여러 가지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여력이 된다면 고향에 학교를 세우고 싶은 꿈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끊임없이 배운다.
P.S. 길에서 많은 이주여성들을 만나지만 한 사람과 2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는 경험은 흔치 않다.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그의 한국살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과정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 바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휴먼라이브러리 팀
글: 임경환
제 40호 - 201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