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평창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 대해
국제회의를 개최한다는 핑계로 국가 예산을 서로 따오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유지 비극>의 사례입니다. 가렛 하딘이라는 사람이 사이언스라는 자연과학 학술지에 실은 이 논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는 금새 황폐화되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정치인은 “국가 예산은 먼저 가져가는 놈이 임자다”라고 대놓고 얘기했다는데, 불행하게도 이게 현실입니다. 그게 현실이라고 해서, 뻔뻔스럽게 국가 예산을 먼저 도둑질해가려고 난리를 쳐서 되겠습니까? 그 결과는 국가 예산 낭비, 국가 채무 급증, 국가 도산 위기 등 심각합니다.
제가 정말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심지어 환경단체들조차 저런 국제환경회의의 문제를 잘 모른다는 겁니다. 2008년에 열린 람사르습지회의는 심지어 습지운동가들이 “한국의 습지 정책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면서 일부러 유치하기 위해 노력까지 했습니다. 당시 회의에 수백억원이 사용되었는데, 정말 수백억원만큼 효과가 있었을까요? 수백억원만큼 습지가 보호되었을까요? 수백억원 쓴 만큼 국민들의 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을까요? 수백억원 쓴 만큼 정부 정책이 선진화되었을까요?
2014년 10월에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 총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억원 들여서 회의를 개최하면 우리 나라 생물다양성이 좋아지나요?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좋아지나요?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지나요?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우리 피같은 돈을 수백억원이나 쓰고 있는데도, 일부 환경단체는 이걸 비판하기는 커녕,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자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인천 아시안게임, 여수 엑스포 등 극악무도한 예산낭비 사업에 비하면 환경 국제회의의 예산은 적은 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 보호에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정책과 예산의 민주적인 결정인데, 민주적인 결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국제회의 개최에 대해 환경단체가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답답할 뿐입니다. 다른 예산 낭비 사업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예산 사용이 문제라는 걸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살아생전에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게 니 돈이면 그리 쓸래?” 독자 여러분. 생물다양성 협약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들어가는 정부예산 수백억원은 모두 여러분의 돈입니다. 우리의 돈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들어가는 수천억원 돈은 모두 우리의 돈입니다. 우리가 정부에 세금을 낸다는 것은, “이 돈을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곳에 써달라”고 하면서 잠시 맡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우리 돈을 맡아서 집행만 하는 정부라는 놈이 지 맘대로 우리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그냥 앉아만 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