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윤호
문학박사, 순천교육공동체공동대표
세월호 참사로 말을 잃은 지 달포가 지났다. 온 국민들의 삶이 멈춰 선 듯 조용했다. 양심을 지키려는 종교인, 지식인들의 반성과 정부를 향한 진실 촉구 선언이 줄을 이었고, 국민들의 참배도 계속되고 있다. 예술인들의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문인들의 침묵과 절필 소식은 더욱 가슴 아리게 한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원인에 대해 사회학자, 철학자, 인문학자 들은 ‘돈에 묶여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수명이 다 되어 배를 비싼 값에 구입해 운항해 왔다. 어디 배뿐이겠는가?

요즘 즐겨 보는 TV 드라마가 ‘정도전’이다. 포은 정몽주와 마지막 술상을 마주한 두 사람의 대화는 사뭇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죽음 직전이라는 것을 직감한 삼봉 정도전은 40년 동안의 우정을 돌아보며 ‘내 아이들만은…’ 하며 아비로서의 마지막 부탁을 한다. 포은도 ‘왜, 목숨만은 살려주라고 하지 않느냐’며 눈물을 곱씹는 장면. 아이들만은 지켜 주겠다는 친구에게 삼봉은 고맙다는 말을 되뇌인다. 원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그것이면 족하다. 미래를 지켜 준다는데,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 주었기에 원망도 후회도 없다는, 죽음을 앞둔 삼봉의 고백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세월호는 그 최소마저 지켜주지 못했다. 어른들, 그것도 배의 구조와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가 첫 번째 구조선을 차지했다. 더 이상 아이들의 미래는 지켜주지 못했다.

이성계는 건국이념으로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선포하며 주자학을 접목하여 조선을 세운다. 그러나 조선은 성리학의 고려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색당파와 부익부 빈익빈의 세태에 함몰되고 만다. 변화와 개혁은 어느 시대이든 계속되지 않으면 결국 고인 물이 되고 만다는 교훈을 얻는다.

17C 말, 썩어가는 조선을 바꾸어 보겠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서학이라는 서양문물이 천주교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일부 당파에서 밀려났던 양반들의 귀가 번뜩했다. 그리고 생각의 문이 열리면서 개혁운동이 전개된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 정약용은 형제들과 함께 문초를 받고 강진으로 유배를 간다. 그는 그 곳에서도 개혁의 끈을 놓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여유당집’ 등이 그것이다.

당시 실학은 많은 죄인을 만들었지만 100년 뒤 고창에서 동학혁명이라는 농민운동으로 이어지며 개혁정신을 이어왔다.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했던 말이 귓전에 쟁쟁하다. “실패는 없네. 비록 지금 바꾸지 못했어도 다음에 누군가가 바꿀 수 있을 거야. 그도 못하면 그 다음 또 누군가가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야”

그러나 반대로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해 버리면, 국민이 주권이고 주인 되는 나라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생각의 변화는 결국 인식의 문제다. 교육과 맞물린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와 신자본주의의 교육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신자본주의 속의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날 개혁운동이 5년 전부터 시작된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등장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특별한 이론이나 학설도 뚜렷치 않다.

인문학 교육의 첫발은 ‘사람의 길’이다. 나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옛 어른들은 패륜아에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책망했다. 오직 먹기 위해서 살아가는 짐승.


두 발로 걸으며 앞 사람의 눈과 마주하고, 그의 아픔과 슬픔, 행복을 함께 느끼며 위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의 길. 때로 하늘을 쳐다보며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관용과 나눔의 실천에 대한 답을 내놓는 인자의 살림살이가 곧 논어의 인(仁)이 아니던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지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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