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현
순천고 교사

끼니때가 되어 밥을 먹다가도, 자식을 앞세운 부모 앞에서 꾸역꾸역 음식을 넣고 있는 것 같아 목이 메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한꺼번에 보여준 세계적 사건입니다. 국가와 정부가 왜 필요한지, 심각하게 회의해 보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씨랜드 참사로 아이를 잃고 해외로 이민을 간 부모처럼 나도 여건만 되면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수학여행은 근대 국가의 유산
이참에 저는 수학여행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여행으로 말미암아 꽃다운 학생들이 자꾸 죽고 다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놀 시간을 주지 말자는 말도 아니고,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아련한 추억을 아이들에게서 빼앗자는 얘기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세상이 달라져서 여행이 일반화되고 다양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수학여행은 일제의 잔재, 근대 국가의 유산입니다.

아시다시피 학교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학교는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제, 지배하기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학교는 국가의 동원령에 일사불란하게 응할 수 있는 국민을 기르기 위해 제작된 기획 상품입니다. ‘근대’와 ‘일제’가 겹치면서 우리나라 학교는 더욱 군대와 비슷해졌습니다. 학교와 군대가, 또는 교도소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 강고한 담, 수위실과 위병소, 넓은 운동장과 연병장, 구령대, 짧은 머리카락, 교복과 군복 등 판박이입니다. 수학여행도 전체, 집단, 애국의 이념적 바탕에서 구성된 교육활동입니다.

개인이 파편화된 지금, 우리 사회에 공동체의 복원과 공동체 의식의 제고는 절실합니다. 그러나 수학여행과 같은 전체적, 대규모 집단적 행사로는 진정한 공동체(의식)의 회복이 어렵거나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본의 아니게 권력 집단의 요구에 복무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수학여행 대신,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공동체 의식 함양하는 여행
먼저, 학급별 (테마)여행입니다. 이미 일부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걸 일반화하면 어렵지 않게 정착될 것입니다. 당연히 학교 급별, 지역 등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조별 (테마)여행입니다. 학급, 학년 단위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테마를 정해 오라고 합니다. 학생들의 희망을 받습니다. 모둠원끼리 자세한 여행 계획을 세웁니다. 부모와 교사가 보완해 줍니다. 여행을 갔다 와서 보고서를 씁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여행입니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가고 싶은데 결석을 할 수 없어서 가족 여행을 포기하거나 학생을 빼고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제도도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많이 이용하지 않습니다. 왠지 두드러져 보이고 수업 결손이 있을 것 같아, 현실적으로 마음 편히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 외,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요.

중, 앞의 두 가지는 ‘특정한 시간에 모두 함께 여행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지금, 학교의 경직된 틀 때문에 학급마다, 모둠마다 여행 기간을 다르게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학교가 좀 더 유연해진다면 1반은 봄에 제주도로, 2반은 가을에 설악산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1조는 여름에 부산으로, 2조는 겨울에 평창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요? 사나흘 수업을 다 같이 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나요? 그러려면 학교 당국과 교사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교사 본연의 임무입니다. 만약 앞의 두 가지가 자유로워진다면 학기 중 가족여행은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기존의 틀을 깨는 아픔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규모, 학생 자율로 꾸리는 여행
수학여행은 이번 세월호 사고의 원인이 아닙니다. 선장과 선박회사, 정부의 안일과 무능이 빚은 역사적 참극입니다. 그럼에도 수학여행에 대한 재고를 제안하는 까닭은, ‘대규모, 전제적’인 기존의 수학여행 방식이 엄청난 학생들의 희생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학여행의 탄생 동기가 상당히 불순하고, 방식은 이미 철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참에 전체적인 수학여행이 소규모, 학생 자율 여행으로 바뀌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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