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지금 길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꽃은 민들레입니다. 도로 옆에도, 보도블록 사이에도, 담장 밑에도 작은 땅만 있으면 어김없이 민들레가 피어오릅니다. 다 자라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민들레 씨앗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습니다.

“나 어릴 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진미령이 부른 ‘하얀 민들레’라는 노래 가사에는 민들레 씨앗이 두둥실 떠나는 애틋하면서도 홀가분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민들레 씨앗 하나가 날아감에는 지금까지 품어 키워준 엄마를 떠나 이제 자기 삶의 행로를 헤쳐가야 하는 애처로움과 자유로움이 함께 합니다.

민들레 씨앗 하나도 그럴진대, 대부분의 세상일은 일면적으로 한가지만의 정서나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이 있어도 그 다른 면에는 길게 보면 생각지 못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를 무시하면 절대 안 되듯 현재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생명력이 강해 영하 5-10 도까지도 광합성이 가능하며, 겨울에 잎과 줄기는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납니다. 아무리 밟고 밟아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민중과 같다고 민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토종민들레는 다른 꽃의 수분을 받아야 씨앗을 맺는 타가수분을 하지만, 서양민들레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자가수분을 하니 번식력이 더 우수합니다. 또 토종민들레는 1년에 한 번만 꽃을 피우는 데 반해 서양민들레는 여러 번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토종민들레보다 서양민들레를 쉽게 볼 수 있죠.

서양민들레는 세계 5대 약초에 들어가며, 3천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서도 건조한 곳이나 산성 토양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학명으로는 Taraxacum platycarpum H. DAHLST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입니다, 이중 타락사쿰은 '질병'을 뜻하는 그리스어 타락소스와 '치료'를 뜻하는 아크로스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름에 이런 뜻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민들레가 얼마나 중요한 약초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토종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민들레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생태계를 교란하지도 않습니다. 약효의 차이 또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토종이 좋고 서양민들레는 그보다 못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라는 말에 담긴 소속감이나 자긍심은 간직해야 하지만 배타심이나 우월감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토종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과 외국산을 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외국산을 배격해야 토종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외국산을 수용하면 토종을 경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한국인’보다 ‘지구인’이 더 중요한 범주에 위치할 때가 되었습니다. 현재 나타나는 기후 이상, 환경 오염, 핵의 위험, 자원 고갈, 부의 편중, 노동 시장 등 어느 것 하나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대에 따른 인식의 범주도 바뀌고 사고의 깊이도 달라져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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