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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살고 싶다문화의 거리‘상 갤러리’- 사진작가‘정상인’
기획취재 2팀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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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승인 2014.04.17  15: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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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인 사진작가
독특한 이름으로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들. 금곡동에서 ‘상 갤러리’를 운영하는 ‘정상인’ 사진예술가. 예술가는 흔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예명을 짓기도 한다던데, 예명인가? 궁금했다. 그는 무엇에 심취해 있었는지. “우주에 떠 있는 별 중 아무리 가까이 있는 별도 공전 중 각도가 1초가 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주 이야기라니, 갑자기 ‘상 갤리리’ 라는 우주의 광활한 세계에 진입한 듯.

 ‘상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은 사진이라기보다 그림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사진인지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한참을 지나 다시 떠올려 생각하게 하는 사진이었다. 왜 이런 사진을 담았을까? 액자에 단정하게 걸려 있는 사진들을 보며 질문했다.

“사진이 참 독특해요. 그림 같아요. 어떻게 저런 이미지의 사진이 나오지요?”

“사진은 처음에는 복사의 개념이지만 그 다음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사진은 자기 가슴 속에 있는 것을 표출하는 것이다.”

사진은 만들어진 이미지고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어떤 인화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그는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어도 인화지 값이 너무 비싸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 이미지를 찾을까? 하루에 16시간을 작업하면서 연구하고 골몰했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사진을 인화하는 데만 한 컷 당 1시간 30분에서 4시간이 걸린 작품들로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데 많은 종이 값이 들었다고 한다. 돈벌이도 변변치 않은 그가 값비싼 인화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친구 덕분이다.

‘알버트 김’ 이라는 친구는 인화지가 다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소포를 보내온다. 소포에는 인화지와 약품이 들어있다.

사진을 넘어선 ‘예술(Art)’에 대해, ‘예술가(Artist)’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꿈꾼 것은 30년도 지난 대학 3학년 때의 기억이다. 전두환 정권 때, 한창 데모하느라 정신없었을 때, 학문에 열중했던 교수님 한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가 시끄러운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인은 정치한다고 난리고, 정치인은 사리사욕만 챙기고, 학생은 데모만 하고 있다. 너희들이라도 제 자리를 지키면 좋겠다. 너희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을 때 그 때 가서 잘하면 된다.” 그 말씀은 당시 강렬한 충격이었다.


Artist는 Art로 표현해야 한다

그때 새겨진 말씀 ‘Artist’는 ‘Art로 자신이 뜻하는 바를 표현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직도 그를 지탱해 주고 있다. 그는 쓸쓸한 듯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말했다.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다가 배고파서 죽을 수 있는 게 Artist가 아닐까요?”

예술에 평생을 걸고자 했던 그의 삶은 순조로웠을까? 한때 사진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예술가로서 작업에 열중할수록 점점 가난하고 궁핍해졌다.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꿈꾸며 작업에 몰입할수록 사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대한민국은 가난한 예술가를 곱게 봐주는 사회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부양해야할 가족이었다. 열심히 전시회를 하고 작품 활동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예술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일 뿐이구나.’를 절감한 순간 슬럼프가 찾아왔다. 사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시절을 ‘낙공’이라고 표현했다.

수도 없이 다시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참회밖에 없었다. 백배, 천배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 잘못입니다.” 오직 그 말만 되 뇌이며 날마다 절을 했다. 다른 아무것도, 그 무엇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없었다.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시간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한참이 지난 지금은 괴로웠던 그 시간이 도리어 고마운 시간이었다고, 모든 인연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동안 누가 그런 경험을 주겠나? 그를 만났기에 그런 경험을 했고 충분히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삶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배우는 사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 지난 6년간 일본에서 살았다.

   
▲ 사진작가들의 게스트하우스로 쓸 요량으로 고쳐지고 있는 집.
일본에서 변변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돈이 없어서 공공근로도 하고 보험회사도 다녔다. 어머니 집에서 살며 겨우 돈을 모아 금곡동에 2층 집, 60평을 3천 만원에 구입했다. 현재 일본에 근무하고 있는 아내가 정년 후 돌아오면 함께 살기위해 작년 7월부터 천천히 집을 수리하고 있다. 집이 워낙 커서 사진작가들의 게스트하우스로 쓸 요량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집수리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혼자서 다 하고 있다. 집을 싸게 샀다고 좋아했더니 골목 길 안쪽에 있어서 차가 들어갈 수도 없고, 기계를 들일 수도 없어서 이만저만 골치가 아니었다. 외벽만 두고 전부 뜯어 자갈은 자갈대로 흙은 흙대로 집안 다른 곳에 재활용 차원으로 메꿔서 처리했다. 나무는 작업대로 만들고, 유리창은 다시 재활용해서 붙였다. 돈도 없고 쓰레기 처리하는 일도 엄두가 안 나서 한 일이지만 순천에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순천시에서 슬로건으로 내건 생태도시다운 건축 작업이 시민의 손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비용으로 든 돈은 단돈 15만원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달리 방법이 없어 이렇게 작업을 했다지만, 이런 고된 과정을 거쳐 고쳐지는 집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업하는 과정, 과정이 하나의 작품이었다.

   
▲ 집을 싸게 샀다고 좋아했더니 골목 길 안쪽에 있어서 차가 들어갈 수도 없고, 기계를 들일 수도 없어 전부 수작업으로 뜯어 자갈은 자갈대로, 흙은 흙대로.

동네 어른들은 지나다니며 수시로 “도대체 언제 끝나냐?” 고 묻는다. 뭐든지 빨리 빨리 진행되는 것만 봐온 사람들로서는 이 느린 작업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저는 안 질리고 재미있는데, 보는 사람들이 지쳐 해요.”


철학과 예술이 담긴 천천히 고쳐지는 집

천천히 고쳐지는 집에 철학과 예술과 삶을 담아진다. 그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철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예술을 지향하시는지?” 질문에 예술이라는 화두로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이 술술 나온다. “옛날에는 예술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담은 것이니까. 그 후 예술은 놀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그 다음에는 예술을 수행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예술은 의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사진에 매달려 살아왔고, 이제는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을 잘 정리하여 후세에 남겨주고 가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의무라는 것이다.

정상인 사진가의 요즘 생각은 ‘그냥....살자. 죽을 때까지 웃으면서.’
 
 기획취재2팀 / 정리 박경숙, 박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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