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매산고 농사동아리 AㆍVㆍI (Agricultural Volunteer Institution)

정신이 육체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학교교육, 사각의 건물 안에서 밤 열시까지 공부만 하는 아이들. 이런 학교 교육을 통과 한 청소년들의 삶이 멋지게 펼쳐질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으면서 신기하게도 학교교육은 전혀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도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 곱게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제 몫의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매산 고등학교 농사동아리 AㆍVㆍI (Agricultural Volunteer  Institution)다. 스스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농사짓는 곳에 찾아가 자원 봉사를 하는 동아리다.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학생들

매산고에서 역사를 담당하는 김은경 교사가 작년 서면 대구실에서 400여 평의 땅에 팥 농사를 지으며 학생들에게 밭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농사동아리는 시작되었다. 매일 머리만 써야하는 공부를 하던 학생들에게 몸을 움직여 풀을 뽑고, 타작을 하고, 팥을 고르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농사를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의외로 아주 즐거워했다. 그동안 쓰지 않던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학생들 몸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지 표정을 아주 밝게 만들어 놓았다.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햇살을 받으며 바람 속에서 팥을 줍던 김은경 교사와 학생들은 희열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작년에 팥을 타작할 때는 기막힌 풍경이 벌어졌다. 팥을 타작하면서 자신들에게 억눌린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 별의별 상황극을 만들어냈다. 야구방망이를 가져와서 팥을 두드리며 학생부에서 처벌 받는 상황극을 만들고 폭력문제로 처벌당한 친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도시에서만 자란 김은경 교사는 마흔이 한참 넘어서야 직접 지어보는 농사를 통해 지난 시절 노동을 통해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 밥이며 간식을 사 먹여야 해서 호주머니를 털어야 할 일이 많아지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머무르며 짓는 농사는 먼저 그녀 자신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경험하며 몸과 표정이 밝아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의 보람도 컸다.

 
올해는 학교에 농사 동아리를 공식적으로 만들었다. 이일은 농사 경험이 없는 그녀로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순천생협에서 도시농업팀을 맡고있는 송은주 팀장이 협조해 주었다.
 

농사동아리 활동은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

제초제 없이는 농사가 안 된다는 동네 할머니들의 성화를 끝내 견디어 내고 무던하던 여름 더위와 씨름하며 풀들과의 사투를 벌여 첫 수확의 기쁨을 맛 본 김은경 교사는 올해는 참여 학생들의 수를 늘렸다. 농사에 자신이 붙었는지 팥 농사에다 고구마 농사를 병행할 계획이란다.

지난 4월 5일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는 절기 청명, 그 첫 행보로 작년에 씌운 멀칭 비닐 제거 작업과 밭 주변 정리 작업을 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학생들은 학교교육을 비판하고 불평한다. 학생들도 야간자율학습이며 보충수업이 무익하다며 투덜거린다. 그러나 막상 여유의 시간이 주어지면 필사적으로 피시방으로 몰려가 게임에 몰두한다. 그 누구도 시원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몸을 안 움직이니 머리도 안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교육 문제의 해답을 찾기에는 너무나 답답한 시절에 김은경 교사는 스스로 대안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 농사동아리 활동은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게임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위로받기보다는 자괴감만 가중되는 시간을 다른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다. 밭에 나와 땀을 흘리며 씨앗을 심고, 풀을 뽑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시간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것 같은 느낌이란다. 작년 팥 수확물은 순천생협 1% 나눔 활동에 기부했다. 참여한 학생들의 즐거움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 지난 4월 5일 비닐 제거 작업과 밭 주변 정리 작업을 했다

올해 처음으로 농사동아리에 참여한 학생들과 첫 농사 활동을 마치고 소감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농사체험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뭐냐?” 는 질문에 학생들은 다양한 소망들을 풀어낸다.

“친구들과의 소통, 자연의 소리, 땀방울, 수확의 기쁨, 귀농 준비” 이것이 이 땅에 사는 고등학생들이 누리고 싶은 것들이다.

▲ 고된 노동 후에 친구들과 함께 먹는 밥

사람은 누구나 삶의 보람을 얻고자 고귀한 땀방울을 갈구하는 욕망이 있다. 하물며 가장 순수함을 지향하고 세상을 배워나가는 학생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김은경 교사는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풀의 성장 속도와 여름 더위 그리고 모기의 극성은 상상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일일이 수작업 해야 하는 팥 고르기 작업은 끝이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매산고 농사동아리 AㆍVㆍI 는 흘린 땀방울에 비례하는 보람으로 그 곳을 향해 항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매산고 농사동아리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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