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스/님/과/즉/문/즉/설-대화합시다! 함께 삽시다!

▲ 이 시대 화쟁으로 길을 나선 도법스님
도법스님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불행해서 시름하는 곳을 떠나서는 불교가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인간으로서, 불교 수행자로서 인간답게 불교 수행자답게 살기 위해 세상의 고통과 불행의 소리를 듣고 고통과 불행을 벗어나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응답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고,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화쟁을 통한 성공 사례는 있나요? 
   불교계 내부에서는 봉은사 문제 풀어냈다. 매동마을 문제도 몇 년이 걸렸다. 시청, 원불교, 지방유지, 마을 분들을 모두 설득해야 했다. 마을 공동체가 깨진 것 꿰매지 못했다. 일 자체는 합의해서 해결했다.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려면 지혜, 힘이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미 한쪽 편이 돼 버렸다. 우리 시대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일을 누가 할 수 있는가? 정부는 이미 싸움 당사자고 정치는 분쟁을 역이용해서 이득을 본다. 종교계가 이 시대의 화두를 던지고 그 역할을 하면 좋겠다. 쌍용차 문제를 사회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가자고 했을 때 해고자 쪽에서 냉소적이었다. 관계 당사자 모두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종교계가 투철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기에 맞게 역할을 했으면 쌍용차문제 매듭지었을 텐데, 그 역할을 종교가 못했다. “뭐 하는 짓이냐?” 반발했던 노조 쪽에서 “강하게 싸웠던 것보다 의미있게 진전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 지금과 같이 국가권력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시대에 화쟁이라는 말은 ‘그냥 순종하고 살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 시대에 화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밥을 먹으려면 벼를 키우고 씻고 앉혀야하는데, 요즘에 버튼 하나 누르면 밥이 나오는 것처럼 그런 해답만 찾는다. 우리가 사회적 문제로 첨예화되었던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새만금 문제, 평택 미군기지 문제, 제주 강정마을 문제, 한진중공업 문제, 쌍용자동차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우리가 똑같은 방식을 안 했나?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렸으면 대안을 찾자고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볼 땐 다 무너졌는데, 다시 그 방식으로 하자고하면 설득력이 있나?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
국가권력이 언제는 이렇게 안 했나. 우리가 기억하는 가까운 역사에서 새만금, 천성산, 4대강 문제도 다른 게 뭔가? 농민운동도 여의도에 10만 명만 모이면 해결이 될 거라고 하면서 운동을 해왔다. 싸워서 이겼다 한들 농촌 다 무너졌다. 뭔가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답이 나왔다면 그리로 가면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투쟁해서 쟁취하자’는 것이 현실성 있는 얘기인가? 이 부분을 한 번 정리 해놓아야 다른 길에 대한 이야기가 진지하게 들릴 수 있다. 이것을 놔두고는 다른 이야기해봐야 진지하게 안 들린다. 우리가 훨씬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저는 지혜로움 중에 하나가 근본적인 물음, 근원적 진실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관옥나무 도서관에서 이루어진 도법스님과 순천시민들의 이야기 마당

▶ 상대가 되는 편들은 권력과 돈이 있다. 과연 대안적인 방식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어쩌면 인생살이에서 포기하는 힘과 능력이 있으면 상당히 가벼워질 거다. 저는 사실 대안적으로 뭘 해서 성공하거나 하는 실력이 있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딴 소리를 하고 앉았냐? 가까운 역사에서는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킹, 만델라 같은 분들은 다른 길을 가셨던 분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분이 간디다. 당시 대영제국은 오늘날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의 대명사로 막강한 자본력과 물리력으로 무장돼 있었던 국가다. 간디는 식민지하에서 자본력도 물리력도 없는 맨손이었다. 그러면 간디가 무장한 힘은 뭐였는가? 진실과 사랑이었다. 영국은 총칼로 무장하고 있는데, 간디는 진실과 사랑으로 무장하고 무기로는 비폭력평화행동을 무기로 썼는데 독립을 이끌어낸다. 그 성공은 보통 성공이 아니다. 세계 양심을 깨워내고, 당시 세계 지성의 시선을 끌었다. 성공했다고 해도 가치가 없는 게 있고, 실패했다고 해도 가치가 있는 길이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성공했던 아니든, 그것을 다루었던 세계관이나 가치의식이나 방법론들이나 태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본인들이 인간적, 인격적으로 조금이라도 성장했는지, 함께한 이들이 변화하고 성숙해졌는지 그런 것이 중요한 가치척도가 되어야 한다.
 

▶ 국가권력이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처럼 지역도 마찬가지다. 신도심을 개발하며 원도심 공동화 문제, 자연파괴, 모두 힘을 가진 정치와 행정이 일으키는 문제다. 지역문제는 더 첨예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에 쉽지 않다. 화쟁적 사고방식, 화쟁적 방법론으로 확실하게 풀어내는 경험은 중요하다. 20세기까지는 죽임의 역사를 살아온 것이기 때문에 미래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으로 삶의 방식을 모색하자. 기본을 하지 않고 사안 하나만 다루는 것은 어렵다. 우리도 끊임없이 진실을 이야기 해왔다. 그들이 말한 것이 진실인가? 우리가 추구한 것이 진실인가? 본직적인 진실을 묻는 작업을 간과했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나타난 현상, 사실만 붙잡고 싸웠다. 진실을 간과하고 사실만 붙들고 거짓말한 진실을 응징하겠다는 것이 현상이다. 좀 더 근원적인 진실은 뭘까?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할 세상이다.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할 존재다.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할 민족 구성원이라는 대전제에 투철하지 못한 거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엄연한 진실에 투철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대화 풍토다.
 

▶ 답은 알고 있지만 정리되지도 실천되지도 않는다. 진실과 화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개개인이 생명평화적 사유방식을 익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대화를 많이 하면 좋겠다. 진보든 보수든 합리적인 사람들이 첨예한 의제를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근원적 진실을 드러내면서 불합리한 지점은 드러내고, 합리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공론화하고 주문하는 역할을 어른들이 해주어야 한다. 순천지역에 ‘진실과 화해의 길을 열어가는 100인 위원회’ 같은 것이 만들어져 첨예한 의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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