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를 가지고 안마지압원을 운영하는 최삼 씨

 

▲ 안마지압사 최삼(44세)씨
“1999년 4월 3일로 기억하거든요. 자고 일어나니까 껌껌한 거예요. 저녁에 잤으니까 새벽인 줄 알았어요. (여동생에게) 불좀 켜라 그랬더니, 오빠 불 켜졌어. 그러는 거예요. 아 눈이 안 보이는구나 느꼈어요. 눈앞이 캄캄했죠.”

그날 이후로 최삼 씨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다. 베체트포도막염이라는 희귀병이 최 씨의 시신경을 손상시켰다. 그때 그이의 나이는 서른 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최 씨에게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답답함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동시에 삶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러던 어느날 장애인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인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서울 상계동에 있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곧장 114에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그뒤 상일동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에 가서 점자와 일반보행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을 습득한 뒤 2001년도에 대전 맹학교에 들어갔다.  2004년도에 맹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6월부터 지압원을 운영하다가 한번 실패를 맛보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뒤 좀더 공부를 하고 2011년부터 순천 인제동에서 명성안마지압원을 운영하게 된다.      

그에게 안마는 ‘생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2006년도에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비시각장애인들도 안마사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된데다가, ‘맹인은 더러울 것이다’는 편견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보다 일반인에게 안마를 받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마사지가 대중화되고 안마시술소가 퇴폐업소라는 이미지까지 겹치면서 안마를 받으려는 사람들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순천에서 안마지압원을 운영하면서 처음에는 공치는 날이 더 많았지만 최근에는 입소문이 나서 하루에 2~3명 정도가 안마지압원을 찾아주어서 그럭저럭 운영은 해 나가고 있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니 그 정도 수입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 점자로 기록되어 있는 고객카드

경제적인 어려움은 최 씨가 살아가는데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때때로 그이를 슬프게 한다. 순천에서 안마지압원을 차리려고 계획했다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건물에 불이 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물을 임대하지 못했을 때 참으로 슬펐다고 한다.


나와 다르지 않은 최 씨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나는 그이에게서 자꾸 나와 다른 점, 시각장애를 갖게 된 후의 변화, 시각장애로 인한 불편함들을 묻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이의 대답은 “그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열심히 사는 거요~”,“불을 쓰지 못하는 것은 불편하긴 한데, 크게 불편한 것은 없어요”, “다른 변화는,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이고”라고 덤덤하게 얘기할 뿐이었다. 오히려 이런 나의 질문들이 그와 나를 구분짓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최 씨의 삶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교통약자 콜택시를 불러 이동할 수 있고, 라면이 먹고 싶으면 커피포트를 이용해 끓여먹고, 물건이 필요할 땐 마트에서 주문해 배달로 받을 수 있고, 시각장애인들과 만나면 윷놀이를 하면서 놀 수도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 맞게 삶을 재조직해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최 씨를 시각장애를 가진 ‘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대하고 있었다.

▲ 10년 세월 안마를 해 온 최삼 씨의 손가락은 손톱이 많이 뭉개졌다. 시종일관 밝은 모습의 그가 손가락만큼은 한사코 부끄러워했다.

몸을 움직이기 전에 손을 내밀어 장애물을 확인하는 것은 나와 달랐지만 신문에 나갈 자신의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정보를 찾아볼 수 있어 점점 기억력이 퇴화해가는 나와 달리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이의 기억력은 오히려 탁월했다. 오디오북을 통해서 매주 두 권씩 책을 읽고, 매일매일 팔굽혀펴기를 200개씩하고,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 매주 두 권씩 읽는 그는“책 백 만권이 있어도 불이 나면 다 없어지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무도 못 훔쳐가요”라고 말한다.
 
최삼 씨의 올해의 목표는 장가가기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외모는 상관이 없단다. 자신을 잘 도와줄 수 있는 마음 착한 사람이면 좋겠단다. 마음 착한 사람을 만나 서로 도와가며 오순도순 살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한다.

그이를 만나기 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장애가 시각장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이는 “시각장애인이 최고 낫다. 눈만 안 보이지 가고 싶은데 다 가지, 노래부르고 싶으면 노래 부를 수 있지. 대화도 되지”라며 씩씩하게 얘기했다. 그랬다. 그와 나는 한 시간 동안 별 문제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가 인터뷰 도중에 한 말이 귀에 맴돌았다. “불쌍하게 생각 안했으면 좋겠어요.”
 

정리: 임경환

 

 

 
휴먼라이브러리는 2000년에 덴마크의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로,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리듯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빌려’서 만나는 것입니다. 기획취재2팀은 순천에서 휴먼라이브러리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 있는‘밑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들을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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