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순천분회

최근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성장 신화 속에 감추어진 삼성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초인류기업을 자임하며 뒤에서는 노동권과 인권을 짓밟았던 온갖 악행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순천에서도 영화의 동기가 되었던 삼성 신화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노조경영을 자랑하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는데,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순천광장신문은 전남 동부권에서는 유일하게 조합원이 가입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순천분회 간부들을 만났다.

▲ 왼쪽부터 조학현 순천분회 총무, 유송기 부지회장, 박현철 순천분회장

직원 중 90%가 협력업체 소속
TV나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이나 휴대폰이 고장 나면 찾는 곳이 삼성전자서비스이다. 때로는 방문기사를 집으로 불러 가전제품 수리를 맡기기도 한다. 이렇듯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내근 직원과 외근 직원으로 분류된다. 보통 핸드폰이 고장 나면 찾아가는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내근 직원과 냉장고, 에어콘, 가전제품 등이 고장 나면 출장 수리를 담당하는 외근 직원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은 전국적으로 6000여 명이 있고 108개 협력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박현철(36세) 순천 분회장은 “순천지점은 순천, 동광양을 포함하여 ‘디지털 삼성서비스(주)’라는 협력업체 소속으로 71명의 직원이 있고, 외근 직원은 34명이다. 이 중 조합원은 11명이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삼성전자 본사 소속 직원은 전체 직원의 불과 10%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본사 직원에 비해 협력업체 직원의 근무여건은 열악하다고 한다. 박씨는 “처음 입사했을 때 근로계약서에 기본급이 얼마인지 나와 있지도 않았다. 명절보너스도 없고 상여금도 없었다. 직원이 기본급의 10%를 적립해 그 돈으로 설날과 추석보너스를 주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토요일도 6시까지 근무했고 일요일에 부르면 나가서 일했지만 시간외 수당도 야간 휴일수당도 없었다. 외근 직원은 자기 차타고 다니며 기름값 내고,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나도 다 우리가 부담한다”는 설명이다.
 
순천분회 조학현(33세) 총무도 “초인류기업이라 이야기하며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협력사 직원들에게 나가는 임금과 근로조건은 최악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런 과정에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이 2013년 7월 14일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주까지 포함된 호남권에서 가장 먼저 조합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부지회장을 맡고 있는 유송기(43세)씨는 “노조를 만들자고 해도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동래센터 AS직원들이 잔업수당과 야간휴일수당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센터를 폐업 해버렸다. 지금 지회장이 동래센터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전국의 기술자들이 카톡을 통해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는 설명이다.
 
순천분회는 2013년 8월 구성되었고, 내근직원보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외근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조합원이 많을 때는 34명의 외근 직원 중 18명까지 되었으나 지금은 11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단결력은 높아져 11명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비수기 때 대출받아 성수기 때 갚아요”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은 기본급, 각종 수당이 없는 대신 AS 건당 수당제로 임금을 받는다. AS 건수가 많은 여름철 성수기(7월~8월)는 급여가 많은 반면, AS가 하루 한 건 정도 있는 비수기 때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박현철 분회장은 “20년 가까이 다닌 사람도 월 평균 200만 원 정도 받는다. 나도 성수기 때의 3개월 급여가 연봉의 절반이다. 비수기 때 대출받아 성수기 때 갚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열악한 근로조건 외에도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해피콜(고객평가점수)이다. 자신도 모르는 해피콜에서 보통 이하의 평가가 나오면 대책서를 작성하고 낭독하게 하는 등 스트레스가 커진다. 퇴근했는데 “만족도 보통 떴다”면 대책서 쓰러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해 퇴근을 해도 쉬는 게 아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난 뒤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사장들의 회유, 협박 등 탄압이 끊이질 않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시간외 수당과 휴일 근무수당이 생겼고, 예전엔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넘을 때까지 근무했지만, 지금은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 해피콜 등 실적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박현철 분회장은 “노동조합 활동 하느라 AS 건수가 많지 않아 급여는 줄었지만 우리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토요일에 쉴 수 있어 급여는 줄었지만 마음은 풍요로워 졌다”고 웃는다.
 
조합원들은 지금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는 삼성 측에 맞서 투쟁을 하고 있다. 협력업체 사장은 투쟁복을 입고 외근 근무를 할 수 없다며 일감을 주지 않아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다. 하지만 날마다 점심시간(12시~14시)에는 피켓을 들고 조례동 삼성서비스 전남지점으로 홍보활동을 나간다. 
 
▲ 조례동 삼성전자서비스 전남지점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는 조합원들.

조학현 총무는 “시민들이 많이 알아봐 주고 홍보물도 자세히 읽어본다. 어떤 사람은 힘내라고 응원도 해줘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유송기 부지회장은 “조합원들 힘들게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근로기준법을 찾고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무노조경영 삼성의 장벽에 조그마한 파열구를 낸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가시밭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내건 아름다운 인간 선언은 삼성전자서비스 현장 곳곳을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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