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학교 아이들과의 만남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때가 많다. 다행히도 나는 성격이 밝은 편이어서 어둡거나 슬픈 감정은 쉽게 털어버리곤 한다. 그것이 교사로서의 내 일이겠거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정 문제로 힘들어 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꽤 오랜 전 일이다. 한 아이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 조퇴를 청했다. 이유를 물으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정당한 사유를 말하지 않는 아이에게 조퇴를 허락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비가 오는 거리로 우산도 없이 아이를 내보낼 수가 없어서 그런 내 마음을 아이에게 전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마치 눈에 안약을 넣은 듯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아이와 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말하고 나면 마음이 좀 풀릴 거야. 어서!”

“저, 선생님. 아빠가 절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야? 널 사랑하지 않다니? 그건 말도 안 돼.”

“아니에요. 아빠는 선생님처럼 한 번도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신 적이 없어요.”

싸늘할 정도로 완강한 반응이었다.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무뚝뚝한 나머지 사랑을 안으로 숨기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반감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잠시 말을 잃고 앉아 있다가 다시 물었다.

“아빤 술 좀 드시니?”

“거의 매일 드세요.”

“술을 드시면 어떠시니? 그땐 애정 표현을 좀 하시니?”

“아빠는 애정 표현 같은 거 몰라요. 술을 드시면 저를 앉혀놓고 끝없이 잔소리를 하세요.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혼자서만 말씀을 하세요. 친구들은 아빠가 술을 드시면 평소보다 더 잘해주신다고 하는데 우리 아빠는 잔소리밖에 하실 줄 몰라요. 어떨 때는 정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나는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자식 사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크나큰 사랑이지만, 평소에는 너무 가까운 나머지 마치 자기 자신을 대하듯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천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성품을 지닌 부모라면 그 정도가 심할 수도 있다.

다음날, 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어제는 네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말을 못했는데, 선생님이 널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아빠가 널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 만약 너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난 잠깐 슬퍼하고 말겠지만 부모님의 가슴엔 평생 상처로 남을 거야. 널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야. 다만 너무 가깝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사랑을 본인조차도 못 느낄 수 있단다. 그리고 아빤 나이가 많으신 분이야. 지금에 와서 성격을 고치시기도 쉽지 않을 거야. 차라리 네가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 결국 아빠 때문에 네가 불행해지면 너만 손해잖아.”

그런 말을 해준 뒤 한 달 쯤 지나 아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지난 번 저 마음 아팠을 때 같이 아파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아빠에 대한 말씀도 감사드려요. 아직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지만 선생님 말씀 듣고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란 말 속에는 따뜻함과 슬픔이 함께 공존한다. 지금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를 제자 아이는 어떤 가정을 꾸렸을지 자못 궁금하다. 모를 일이지만 알 것도 같다. 노력해보겠노라는, 바로 그 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안준철
순천효산고에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별에 쏘이다>외 시집 몇 권,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외 교육산문집 몇 권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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