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Y병원에서-(2)

 
이틀만인가, 주치의가 진단 결과를 말했다. “할머니는 시신경 탓으로 눈이 그런 것이 아니라, 뇌신경 탓으로 그런 것입니다. 뇌신경 6번이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니까 눈동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전날 수련의가 뇌에 염증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척추에서 물을 빼 갔는데 마침내 그런 진단을 내린 것 같다. 의사가 말했다. “이제부턴 ‘스테로이드’란 약을 쓸 것입니다.” 나는 그 약의 성질을 알지 못했다. 그 약이 내 아내를 죽음의 운명으로 내몰 줄은 미처 몰랐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 아닌가.

사나흘이 지나자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동안은 눈동자가 멈춰 있었던 것이다. 치료가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검사방법은 간단했다. 의사가 아내의 눈앞에 자기 손가락을 세우드니,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보라고 했다. 눈동자가 좌우로 따라 돌았다. “앞으로 한 주 정도 더 치료하면 좋은 결과를 볼 것 같습니다.” 나는 큰 병원으로 온 것이 정말 잘했다고 여겼다. 눈동자를 움직이게 하는데 뇌신경을 치료하다니, 생명의 연결체계란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며느리가 돌보았고, 낮은 내가 지켰다. 아내는 입맛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런대로 조금씩이나마 밥을 먹을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환자 침상 밑에는 보호자가 누워 쉬고 잘 수 있는 땅 붙이 ‘꼬마침대’가 있었다. 역시 이인실이라 달랐다. 실은 며느리가 간병하는데,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지내라고 다른 싼 병실로 옮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병실을 지킬 날에는 그 꼬마 침대에 누워서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담당의사는 아침저녁으로 다녀갔으며, 자상하고 담담하고 친절했다. 열흘이 지나자 주치의는 사흘 뒤에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아내가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퇴원비를 마련하려고 친지를 찾아 갔는데, 우선 카드를 빌려주었다.

퇴원한 날, 의사는 일주일 지나고 오라고 했다. 다시 한 번 눈동자의 움직임을 확인하려는 것이리라. 아내는 그 때까지 아들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며느리의 돌봄이 하도 극진해서 나는 마음 놓고 순천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실은 병원비를 장만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약속한 날 진찰실에 갔더니 의사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정상이라고 하면서 “이제부터 ‘스테로이드’의 양을 차츰 줄여가겠습니다”고 하며, 보름치의 약을 처방했다. 아내는 또 다시 승용차의 뒤 칸에서 내 부축을 받았지만, 서울에서 순천까지 머나 먼 길에 시달려야 했다. 아내에겐 병실에서 해방된 기쁨은 잠시이고, 집에 오는 길에 또 다시 시달려야 할 것이 끔찍했을 터이다.

순천에 내려오니, 딸이 미리 와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집에 오니 좋지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내는 이제 다시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송기득 전 목원대 교수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