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교육의 길을 묻다-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을 순천에 모셨다. 나부터 변화를 모색해보자고 선언한 ‘교육, 혁명, 길을 묻는 사람들’이 주관하고 교육공동체시민회의, 언론협동조합, 관옥나무 도서관이 함께 준비했다. 채 이사장은 강연장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었다니...” 하는 기대로 모여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환대하며 반갑게 악수하며 맞이하는 채현국 이사장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는 “태어난 것이 기적이다. 어릴 때는 몰랐지. 참 희한해요. 첫째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둘째는 모른다는 것을 절대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는 개, 돼지만도 못해요. 누에만도 못해요. 누에는 비단이라도 들어있지. 우리는 배에 똥밖에 안 들었거든. 오늘 주제 <참된 교육의 길을 묻다>는 정말 대답이 없어. 전혀 답이 없어”라며 말을 꺼냈다.

남한테 이기는 법만 가르치는 일제치하에서부터 시작된 학교교육의 역사적인 유래를 설명하던 그는 “함께 같이 살아도 자연에서 못 견디는데, 옆의 사람들이랑 어떻게 잘 해볼까 궁리해야지. 남의 불행을 지 행복으로 알아요. 어떡하면 참교육이 될까? 질문해야 한다”며 “선생들이 학생들하고 사는 것이 즐거우면 그것이 참교육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교육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들이 신나게 살아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육에 정답이 없어요. 질문을 잘하면 될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잘 물어볼 수 있을까? 교육이 왜 이 지경인가? 참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질문하고 기도는 할 수 있잖아? 기도만은 하나님도 못해요. 자기가 하는 것이 기도예요. 하나님이 인생을 못 살아 주듯이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해. 책임지고, 시도하고, 신나하는 나는, 내가 해야 해. 신난다. 신난다하면서.”

청중의 물음에 답하던 그는 마무리를 하며 말했다. “동학의 가르침, 모시고 사는 행동은 중요합니다. 모시고 살려면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해야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이치라는 것이 참 묘해요. 내 말은 다 잊어버리고 이웃과 함께 서로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못되고 힘들 때, 그때가 사는 맛
채현국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지난 1월 4일 이진순씨와의 인터뷰는 충격이었다. 이런 분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왜 그럴까?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어떤 자극을 받아서? 어떤 환경 때문에?

내 인생에서 하나 고르라고 하면 우리 형님의 자살이다. 나랑 배다른 형님의 자살. 1953년 휴전되는 날 저녁 ‘국아 너는 나이도 적고 하니 어머니 할머니 모시고 오래 살아라’며 죽었다. 왜 그랬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을 열심히 했다. 불행도 하나의 힘이 된다. 힘나는 계기가 돼야지. 우리 형 자살 바람에 겉으로는 언제나 신난다. 한 사람에게 결정적인 영향은 다 있다. 샛별, 바람, 만남... 교육에 무슨 수가 있는지 알고 홀리지만 어느 게 그건지 판단이 잘 안 된다.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내 친구들, 내 가족들, 함께 계시는 분들.. 여러분이 기대하고 쳐다보니까 내 딴에 하는 껏 해보는 것이다.
 
 
▶ 최근 순천은 학교 현장의 체벌로 시끄러웠다. 선생님 계신 학교는 체벌이 있나?

별로 흔치 않는데, 박 선생이라고 열정이 심해서 체벌이 일어난다. 항의 오면 빌고, 지도 빌고, 나도 빌고 그래도 자꾸 그런 사고가 난다. 때리는 그 사람 나는 고맙다. 감정 나서 때리는데, 감정 나면 개망신 당한다는 것도 배워야한다. 나도 못된 짓 하다가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다. 누군가는 위로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나도 툭하면 사고 친다. 나는 작아서 열등의식이 있다. 열심히 하는 사람 누가 교권을 깔아뭉개나? 안 깔아뭉갠다. 기적처럼 태어난 삶을 왜? 형님의 자살도 그랬고, 내 엄마가 천한 무당이었어도 다 나한테 힘이 된다. 신난 것이 사람들한테 안 느껴질까? 두들겨 팼다고 시비 걸면 학생한테도 빌고, 부모한테도 빌어야 한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빌어야 한다. 쓴 맛이 사는 맛이다. 갈등되고 모순되는 문제에 닥칠 때 그때 쓴맛을 느끼며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가 사는 맛이다. 교권은 자기 삶을 신나게 살 때 생기는 것 같다. 우리는 통념으로 살며 착각하고 사고하지 못한다. 잘못하고 힘들 때 그때가 사는 맛이다.
 
 

▶ 신문에 보면“돈 번거 자랑하지 마라. 돈 벌려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에게 줄 거 덜 주고 모은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는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나?

나누어 먹기를 잘하면 성공한다. 우리의 속성이 조금 늦게 나누어 준다. 남들보다 앞서 나누어주면 생명을 걸고 돈을 벌어준다. 바로 그걸 했던 것이다. 좀 힘들 때 먼저 나누어 주면 목숨 걸고 벌어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기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사는 사람 모두가 신나게 하는 것을 자꾸 찾아내야 한다. 일을 통해서. 노래를 하든, 연극을 하든 어떻게 하든 신나게. 원리는 그랬다. 운도 엄청 좋았다. 돈 버는 비결은 약간의 상상력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나눠 먹기를 잘해야 한다. 
 
 

▶ 옷에‘화쟁’배지가 달렸는데, 선생님이 생각하는 화쟁은 뭔가?

원효의 화쟁사상에는 관심 없고, 원효처럼 사는 것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도법 스님이 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한 사람에게 원수 삼지 말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순천도 고약하게 당했다. 모든 생명이 끝에 가서는 죽는데, 사람끼리 죽이는 것은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다 죽게 되어있지만 문제는 과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화쟁사상은 ‘죽음과 삶은 함께’라는 것이다. 보도연맹에 죽은 자손들,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용서하자. 안 잊어야 용서한다. 탄광 할 때 광부 중 85%가 전과자였다. 전과자가 된 것이 기가 막히다. 헌 리어카 훔쳐갔다가 잡혀서 전과자가 되고, 고장 난 자전거 끌고 갔다가 잡히고, 고무신 한 켤레 가져갔다가 6개월 징역 살고. 맨 절도였다. 나도 절도해봤다. 1943년쯤 1원이면 큰돈인데, 방에서 그걸 주어서 신이 나서 학교도 안가고 까먹기 시작하는데, 한과, 오꼬시, 조청으로 만든 것들 사먹다 보니 1원을 다 사먹었다. 그걸 안 잊어먹어서 복을 받았는지, 그 전과자들과 나랑 똑같은 한패라고 생각했다. 비겁하고 비루하다고 느낄 때 자기비하 하지 마라. 비겁하다고 느끼고, 비루하다고 느끼면 비루해지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한테 아무 소용없다. 겁만 안 내면 비루한 것도 쓸 만하다. 못난 점 때문에 옆 사람 하고 친하게 지낸다. 어려서부터 떼먹고, 비루하고, 의존해도 괜찮다.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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