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보편적 디자인 도입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공개한 장애인용 기표대와 비장애인용 기표대 모두 휠체어 사용자의 투표의 비밀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시민단체의 지적에 따라 장애인용 기표대를 임시적으로 보완해 공개했다.

지난 2월 선관위가 공개한 비장애인용 기표대는 폭이 67cm, 기표판의 높이가 100cm로 휠체어가 기표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용이라고 공개한 기표대는 폭이 90cm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높이 85cm의 기표판이 기표대 오른쪽에만 설치되어 있어 상체와 양팔 사용이 부자유스러운 사람은 혼자 기표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기표하기 어려운 장애인용 기표대는 비밀선거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며 지난 3월 6일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4명의 장애인을 신청인으로 하여 선관위에 기표대를 수정 제작할 것을 요청하는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 보완 전 장애인용 기표대
     ▲ 일부 보완 후 장애인용 기표대

이에 선관위는 장애인용 기표대 앞쪽에 임시 기표판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새 기표대를 보완했다. 희망법 등 시민단체는 “6.4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기표대의 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제작하기 어렵고, 선관위의 보완으로 임시조치의 목적이 일부 달성되었다”고 보고 지난 3월 17일 임시조치를 취하했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왼손, 발 등을 이용해 큰 문제없이 기표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새 기표대가 문제가 된 것은 “인권에 기반한 행정의 기본원칙은 행정에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인데, 선관위가 장애인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진행한 탁상행정의 결과다”며 희망법은 선관위의 인권적 감수성 부족을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2010년 비준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각국 정부에게 ‘보편적 디자인’을 촉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편적 디자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환경,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법인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또한 “장애인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제4조)”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기준에 따르면, 선관위의 장애인용 기표대는 장애인의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기표대를 장애인용과 비장애인용으로 구분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그 자체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희망법은 “앞으로도 장추련 등 시민단체와 함께 선거권을 가진 장애인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환기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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