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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사꾼이다”32년 간 유기농업을 해 온 조성규 씨
임경환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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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승인 2014.03.19  19: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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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에 똥을 싸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고향인 순천을 떠나 광주에서 ‘유학’중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웠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집에 도착해 용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 앞 계단을 올라서는데 그만 똥을 막고 있던 한쪽 근육이 풀려 버렸다. 결국 똥을 싸버렸다. 이때의 기억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조성규 씨의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그때 엄청난 큰 충격이 온 거예요. 와 이게 도회지 생활. 도시라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똥도 마음대로 싸지 못하는 곳이 도회지여. 그러면 만약에 내가 고향에 있었더라면 어땠겠어요? 가다가 산속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고, 화장지도 없으니까 칡잎을 따서 뒤를 닦고 시원하게 쌌겠죠? 내가 고향 가서 살았더라면, 고향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면 그와 같은 충격을 받을 일이 없죠. 그래서 그때부터 도회지 생활이 싫어지게 된 거고.”

그 경험 이후로 그이는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에는 자신이 농사를 지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가슴 한 켠에는 ‘귀향’에 대한 생각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다. 학창 시절과 군대 생활을 마치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두 달쯤 하고 있을 때, 다시 가슴이 말을 걸어왔다.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그러나 막상 돌아온 고향에서는 자신을 반기지 않았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극구 반대를 하셨다. 다른 형제의 손주들은 도시에서 판사, 의사, 교사 등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친손자가 농사꾼이 되겠다고 고향에 돌아오니 쉽게 이해될 리가 없었다. 그런 손자에게 농사지을 땅을 줄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조성규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버텼다. 그랬더니 조금씩 농사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

두 번째‘똥’을 싸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조성규 씨에게 고추밭에 농약을 치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할아버지는 약과 수동 분무기를 주면서, 그이에게 한 마디를 건냈다.

“밑에 있는 네 개의 고랑은 (약)을 하지 말고 와라”

조성규 씨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똑같은 고추밭이고 똑같은 고추인데, 왜 약을 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

“야, 이놈아, 요건 느그 애비도 주고, 고모도 주고, 먹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 말을 듣고 조성규 씨는 두 번째 ‘똥’을 쌌다. 바지에 똥을 싼 것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돌아온 고향은 순수하고 인심 좋고 남을 배려하는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때 조성규 씨는 커다란 실망과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내가 이런 농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농약을 치든 안 치든 내가 먹는 거하고 소비자가 먹는 거하고는 똑같이는 해야겠다’고. 

그리고 당시(1983년)에는 친환경 농업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때에 ‘무공해 농사법’으로 고추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준비도 없이 시작한 첫해, 담배나방의 ‘습격’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무공해 농사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농약이 없었을 때에도 고추를 재배했을텐데, 그때는 어떻게 했을까?’하고.
조성규 씨는 옛조상들이 했던 농사로 되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했다. 그렇게해서 현재 50여 가지가 넘는 ‘천연살충제’들을 만들어냈다.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아들
자신이 각박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듯이, 자신의 아들 또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받은 것은 핍박과 비난뿐이었지만, 자신의 아들은 환영 받으며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식이 자신의 대를 이어서 농사를 짓지만, 아직도 그는 새벽 4시가 되면 논과 밭으로 나간다. 그리고 대자연과 호흡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기업체 사장과 비교해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산다고 자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들을 남에게 베푸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진안친환경농업대학에서 8년 간 강의하고 컴엔씨라는 법인을 만들어서 농장견학 등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이는 자신이 연구하고 개발한 ‘미생물농법’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귀농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고 싶어한다. 생이 다할 때까지... 그런 그이는 천상 ‘농사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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