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광 상품을 창조한 올레길

 

제주 올레길은 새로운 관광 상품을 창조해냈다는 공로가 크다. 제주도는 이미 1970년대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었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상대적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 1990년대 말부터 제주도지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제주도 관광을 살려보겠노라고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제주올레길이 전혀 새로운 관광 상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그것이 아주 잘 적중했다. 올레길은 제주도에 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풍광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제주도에 뭔가 신비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서울에서 과도한 노동에 찌들어서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로 이런 이미지 전략 덕분에 제주 올레길의 명성은 높아져갔다.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10대 히트 상품에 김연아와 함께 제주 올레길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에 선정한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즉, 제주올레길은 이른바 힐링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광 상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 제주 우도의 올레길 코스 중 하나인 검멀레해변. 제주 올레길은 이처럼 신비롭고 낯선 풍경을 관광객들에게 체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관광 상품을 창조했다
▲ 올레코스 중 하나인 대정읍 사계리 해변의 검은 모래와 산방산, 그리고 순비기나무. 제주 올레길이라는 관광 상품은 이렇게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새롭게 창조되었다.
▲ 제주 비양도의 돌담길. 제주 올레길은 이처럼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제주 비양도가 올레 코스는 아니지만, 올레 코스 중에 이와 비슷한 풍경을 제공하는 곳이 많다.

제주 올레길 덕분에 제주도 관광객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묘하게도 제주올레길이 개발된 시기와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일본엔화의 가치가 높아져서 관광지로서 일본의 매력이 떨어져간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더욱이 중국인들에게  5억원 이상 만 투자하면 거주자격 비자를 발급하는 등,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정책을 제주도가 시행함에 따라 2013년엔 2백만명의 중국인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비자 정책과 환율의 요인도 있었지만, 제주올레길이 제주도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준 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전국 여러 곳에서 각종 걷는 길들이 개발된 데에도 제주올레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길들을 "도보여행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2013년에 낸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595개, 17,671km의 도보여행길이 있다고 한다. 이런 도보여행길은 지자체가 토목공사를 하면서 문화라는 이름을 내세우기에 아주 좋은 소재를 제공한다. 제주올레길의 영향은 이처럼 대단했다. 순천 봉화산 둘레길도 바로 그런 길 중의 하나이다.


순천시는 생태관광의 명소이면서 동시에 생태도시가 될 수 있을까?

환경부의 생태관광 홈페이지(ecotour.go.kr)에선 생태관광을  “우포늪, 순천만 갯벌 등 우수한 자연자원과 주변의 역사, 문화자원을 체험을 통해 느끼고 관찰하는 관광”으로 정의한다. 또한 두산세계대백과를 인용하면서 “환경피해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즐기는 여행방식 또는 여행문화”라는 정의도 소개하고, 생태관광협회를 인용하며 “환경을 보전하고 지역주민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자연지역으로 가는 책임 있는 여행”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세 가지 정의 모두 과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다.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자연자원과 주변의 역사, 문화자원을 체험을 통해 느끼고 관찰하는 관광"이 아닌 관광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모든 관광이 생태관광이라면, 모든 관광이 생태관광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생태관광과 비(非)생태관광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저 개념 정의들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다. 정치인들이 써먹기 좋은 말이다.

생태도시란 도시민이 이용하는 모든 자연자원과 에너지를 도시 내에서 조달하고, 도시생활에서 생긴 모든 폐기물을 도시 내에서 처리하는 도시를 뜻한다. 생태도시를 실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도시는 주변 지역을 착취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경제사(史)학자는, 중세 유럽의 모든 도시가 도시 주변의 농업 지역에서 식량을 얻고, 숲에서 연료 등을 얻었기 때문에 존재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물자와 에너지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21세기 지구에서 생태도시는 아마존 밀림에서조차 힘들다.

생태관광과 생태도시는 개념상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들은 자기 도시가 생태관광 도시이며, 생태도시라고 선전을 많이 하지만, 이런 선전들은 시장들이 선거에 당선되려고 만들어낸 포장에 불과하다. 생태관광 도시가 되려면 일단 관광객이 많이 와야 하는데, 관광객과 함께 에너지가 유입되고 폐기물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은 도시의 한계용량을 쉽게 넘어서 버린다. 그러니, 경제의 많은 부분을 관광에 의존하는 생태관광도시가 생태도시가 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지역주민과 아무 상관 없는 제주 올레길

제주도에서 여행 가이드를 오랫동안 하고 있는 사람에게 제주 올레길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이 사람은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만날 수 있고, 서로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여행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제주 올레길이라는 관광상품은 대안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제주 올레길 관광객을 포함한 제주 관광객과 제주 사람들 사이에는 인간적인 관계가 거의 없다. 물론, 택시 기사들이나 식당 주인들은 관광객을 반길 수도 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조차 관광객 증가가 소득 증대에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제주에 관광을 가는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관광버스를 이용하거나 렌트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에 수많은 식당들도 제주 주민이 가는 식당과 관광객이 가는 식당은 어느 정도 구분된다. 더욱이 올레길 주변에 생긴 예쁘장한 식당이나 펜션들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차린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 많은 여행객들은 큰 호텔 등을 이용하며, 중국 관광객들은 아예 중국인들을 위해 따로 지어진 숙박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올레길 관광객을 포함해서,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의 소득 증대는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 

제주 올레길에서 지역 주민들은 그냥 예쁜 풍경의 일부가 될 뿐이다. 구경 당하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덕분에 제주도 지역주민들의 소득이 증대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주도 여행 경비의 많은 부분은 항공사와 호텔 주인 등 제주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 올레길을 오는 관광객들은 제주 지역 주민과 거의 상관이 없다.



제주올레길로 돌아보는 봉화산 둘레길

우리에게 길이란 무엇일까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길을 걷는 여행자와 길옆에 사는 주민들은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을까요?

순례자의 걸음
톨스토이가 지은 <두 순례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독교 성지까지 걸어서 가는 순례 여행에 떠납니다. 목표지인 성지까지 빨리 가려고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친 사람은 그냥 성지만 보고 왔지만, 순례 도중 가난한 사람들을 돕느라 경비를 다 써버리고 늦게 도착한 사람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티벳의 오체투지 순례에서도 여행자와 지역주민의 아름다운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티벳에서 불교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온몸으로 절하면서 걸으며 성지까지 순례하는 오체투지라는 걸 한다지요. 몇달씩 걸리는 이 순례 여행은 중간에 먹여주고 재워주는 지역주민들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티벳 사람들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을 마치 부처님을 모시는 것처럼 소중한 종교적 기회로 생각하고 기꺼이 무료로 해준답니다.

예쁜 관광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제주 올레길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순례나 티벳의 오체투지 길과 비교할 때 제주 올레길은 어떨까요?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올레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만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필요한 잠은 펜션에서 돈 내고 자면 되니까요.

바로 이런 점에서 제주 올레길은 예쁜 관광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것도 이런 어색함입니다. 제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남의 생활 공간을 구경합니다. 신기하겠지요. 하지만, 그 신기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구경을 당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순례자들처럼 먹여주고 재워주기를 낮은 자세로 요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그 곁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냥 구경꾼과 구경당하는 사람의 어색한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제주 올레길을 따라 하는 지자체들
그런데, 이런 제주 올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이 올레길을 따라서 걷는 길들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주 올레길을 따라서 만들었다는 걷는 길들은 올레길의 저런 문제점을 차라리 극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도록, 산이나 바닷가 등에 조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순천의 봉화산 둘레길도,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제주 올레길보다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제주도 마을 풍경. 제주도엔 논이 적어 이렇게 벼를 밭에 심은 밭벼가 있다. 이곳은 올레코스가 아니다. 만일 이곳이 여러분이 사는 마을인데, 빨간색 등산복을 입고 트레킹 스틱을 짚은 관광객이 지나간다면, 여러분의 기분은 어떨까?

가장 좋은 길은?
가장 좋은 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상파울로에서는 학교 가는 길 프로젝트라는 걸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데 곳곳에 위험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위험 요소들을 먼저 파악하고, 학교 등하교 길을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정비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사례는 광주에도 있습니다. 벌써 십년 전에 철도폐선부지 푸른길 조성사업을 의제21에서 했는데요, 이때 모토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유모차가 다닐 수 있다면 장애인 휠체어도 다닐 수 있고, 누구든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최근에 서울시는 연세대학교 앞길의 차도를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줄이고, 인도는 그만큼 넓히는 대신, 이곳에는 자가용이 아닌 버스만 다니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봉화산 둘레길을 칭찬할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집 앞에서 아침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할 수 있다는 건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일이니까요.

관광 도로 말고 보행도로를 아름답게
하지만, 봉화산 둘레길보다 더 멋진 사업은 보행자도로를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사업입니다. 브라질 꾸리찌바에서는 보행자도로를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서 심지어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 자체를 제한했다고 합니다.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 대신 버스를 편리하게 만듦으로써 교통 문제는 해결했다고 하지요.

그러니, 결론적으로 순천시민께 말씀 드립니다. 제주 올레길 부러워 마십시요. 그 먼 데 가 봐도 별 거 없습니다. 순천만 길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순천시에 시민으로서 요구해 주십시요. 출퇴근과 등하교, 이웃집 마실가기 등, 일상생활에 이용하는 길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달라고요. 
- 장용창 논설위원

기획취재 3팀: 김옥서, 박경숙, 임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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