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어떤 병에 어떤 약초가 좋다는 말에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어떤 약초가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내가 네가 아니고, 너 또한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신체적 조건이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르며 타고난 성격 또한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약초가 열 명 중에서 한 명만 좋아도 그 한 명에게는 그 약초가 거의 만병통치약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 준 고마운 약초니 오죽 좋겠습니까? 이러한 직접적인 자기 경험은 전해 듣거나 배워 알게 된 사실보다 굳건한 확신을 하게 합니다. 한때 회자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엄청난 자기 확신에서 나온 말입니다. 더구나 육체적 체험은 이차적 관찰보다 훨씬 큰 전파력을 발휘합니다. 또한, 설득력도 다른 어떤 것보다 뛰어납니다. 눈앞의 상대가 직접 나았다는데 어찌 믿지 않고 유혹당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자기 체험을 통한 확신은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쉽게 맹신의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한 발 물러서서 차분히 뒤돌아보고, 여유 있게 주변 상황도 살펴보는 검증이 필요합니다. 특히 몸이 아픈 환자의 입장에서는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를 이용하는 것이 과장 광고이며, 정보로 위장한 선전입니다. 인터넷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막무가내로 세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효과가 나에게도 찾아오면 좋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예전에 이렇게 아픈 것이 이것 먹고 나았는데, 이번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하는 소리를 왕왕 듣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부속품의 총합으로 하나의 개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생명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체는 쉬지 않고 변화합니다. 예전의 몸이 변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지금의 내 몸은 예전의 내 몸이 아닌데 언제나 똑같은 효과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라서 예전처럼 좋은 효과를 보는 것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슬프고 섭섭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3. 내 몸은 자신을 스스로 돌본다.
질병과 싸울 때는 자신의 몸 밖의 지원군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급성병의 경우 외부적 처치가 시급하고 간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만성병의 경우에는 몸 밖에서 주입되는 약물보다 인체의 내적 조절을 강구함이 우선이며 근원적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자기는 편안하게 쉬면서 아픈 몸은 의사나 약물이 빨리 처리해주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쉽고 편한 치료에 저절로 마음이 쏠리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근본을 망각한 의존적인 비주체적 자세입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가꾸고 보살펴야 합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자기 몸에 맞는 과하지 않은 운동입니다. 자동차만 버리면 병원의 80% 정도가 폐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40억 년을 거쳐 유유히 적응한 현존 최고의 자기 완결체입니다. 스스로 균형을 이루고 변화해온 자신의 몸을 쉽고 어설프게 바라보지 말고 한 번 믿고 단련합시다.

더구나, 현재 지구에는 인간이 과포화 상태이므로 유행처럼 우르르 산에 가서 좋은 약초를 캐내면 결국 그 약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돼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약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고혈압에 대한 약초부터 다음에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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