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웅
시인
휴렛패커드에서 만든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삼성도 아니고 엘지도 아닌 것. 서비스센터를 검색해서 물어물어 찾아가 맡겼다. 포맷하는 비용이 4만 원. 삼성에서는 1만 원도 나오지 않는데. 하루 지나 컴퓨터 고쳤다는 전활 받고 택시 타고 가는데 택시요금 5천 원. 돌아오려고 한참을 걸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 시내버스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순천 시내인데 이럴 수가.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기다렸지만 30분이 더 지나 겨우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마침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에다가 살 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다가 나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 시내버스와 택시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머리를 숙이고 삼성을 생각했다. 노트북이 삼성 제품이었다면 나는 조례동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갔을 것이다. 창구에 줄지어 선 여직원들의 분에 넘치는 친절 인사 세례를 받았을 것이고 기사들의 재빠른 솜씨로 내 컴퓨터는 금세 정상을 되찾았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정상을 회복한 노트북을 옆에 끼고 조례동의 먹자 골목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그 과분한 친절과 재빠른 솜씨 뒤에는 삼성 제국의 포악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또 하나의 약속’을 보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삼성이 정계와 관계, 사법부에 던진 미끼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의 엑스파일을 공개했다 오히려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처벌까지 받은 노회찬 전의원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도 후회했다.

삼성에서 만든 스마트폰으로 매일 페이스북을 들여다 보고 삼성에서 만든 티브이를 보며 또 삼성제 냉장고와 세탁기를 쓰면서 나는 삼성을 비판하려고 한다. 아, 다 관두도록 하자. 삼성이 밉다고 엘지 제품을 쓰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가. 엘지는 대대로 승계하지 않고 노조를 길들이지 않고 정관계에 로비를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이 기회에 아예 컴퓨터를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정기적으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움직임을 멈추어버리는 이 물건과 안녕을 고하도록 하자. 컴퓨터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도 다 날아가고 써 놓은 원고도 다 날려버리는 이 따위 물건과 더 이상 친해지지 말도록 하자. 그러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방치된 파카 만년필에 잉크를 넣어 종이 위에 글을 쓰게 되지 않겠는가. 아마도 신문사에서는 우편으로 날아온 내 원고를 타이핑하는 편집위원들이 송태웅 지가 로빈슨 크루소인 줄 아는가 보지 하면서 불평을 터트릴지도 모르겠지만.

삼성을 거부하면 닥쳐 올 불편함들 때문에 사람들은 삼성을 거부하지 못한다. 어정쩡한 절충 때문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 어정쩡한 절충으로 세상은 불편한 평화 속에 있다. 저 투명한 하늘 같은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할 용기와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삼성이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삼성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저 청한 삼월의 하늘 아래 진정한 평화가 오게 하려면 우리는 1919년의 삼월처럼 국민이 총궐기해야 한다. 지역과 계층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서 절규하던 선인들의 삼월로 돌아가야 한다. 아니 그 삼월을 바로 오늘에 되가져와야 한다.

입만 열었다 하면 법과 원칙을 말하던 사람이 총체적인 부정으로 대통령이 되었음이 여러 증거로 드러났음에도 아무런 항거도 하지 못하는 야당 따위엔 더 이상 어떤 기대도 걸지 말자. 바로 우리 시민이 나서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주권자 아닌가. 대한민국은 전제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새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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