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전자고 역사 교사 정경호 씨

 
광장신문에서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라는 책이름을 보는 순간 반가웠다. 부모님 고향은 함경북도 명천군이고, 북한에서 태어난 큰언니는 생사도 모른다. 이산가족이면서도 그동안 통일 문제에 대해 외면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러나 내 무의식 속에는 이산가족의 한이 서려져 있었던 것일까? 순천전자고등학교 역사 교사 정경호 씨가 쓴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를 하려고 하니 딸아이가 유치원 다니면서 했던 통일 관련 활동들이 떠올랐다. 1996년에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사)남북어린이어깨동무 주관으로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했던 행사였다. ‘북녘어린이에게 그림보내기’ 그림 전시와 북한에 보낼 쌀을 모으는 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을 챙겨 들고  집으로 찾아 갔다. 휴먼라이브러리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며 내미는 명함에 ‘통일교육연구가’라고 찍혀 있는 걸 보니 순간 내 마음이 환해졌다.

통일 교육 하고 싶어도 교재 없어
정경호 씨는 광주에서 태어나 1998년부터 순천에서 살기 시작했다. 성격상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 뜻이 맞는 단체 활동만 하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이며 1991년에 꾸려진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8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활동하고 있다. 나름대로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던 모임인데 회원들의 열정어린 모습을 보고 배우기도 하며 서로를 고양시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한 추억이 건전한 상식과 깊은 지혜를 갖춘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활동하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 고흥에 사시는 할아버지 독자한테 받은 선물이다.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의 경우 전체 쪽수는 260쪽인데 통일과 관련된 부분은 10쪽 정도다. 통일에 관한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맥락이 없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교사들은 통일 교육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교재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의 기념비가 된 학습 연구년제
그러던 중 2013년 학습 연구년제 교사로 선정되어 1년 동안 여가 시간이 생겨서 서울을 왕래하며 통일에 관한 자료 조사와 연수를 할 수 있었다. 학습 연구년제 보고서 제목이 ‘내 인생의 기념비가 된 학습 연구년제’ 라고 할 정도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1997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쓴 통일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2008년 7월에는 통일연구 중심 대학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원들과 교수들이 함께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여행하였다. 비록 강 건너서 북한을 건너다보면서 여행을 했지만 어렴풋이나마 북한에 대한 실상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대륙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 너머 보이는 가파른 산에 나무를 베어내고 산비탈에 옥수수를 심어 놓은 걸 보니 그들의 치열한 삶의 의지가 느껴져서 마음이 찡해 왔지요.” 북한 주민을 바라보며 느꼈던 연민이 ‘통일교육연구가’의 길을 걷게 하였고, 교과서 밖에서 만나는 발로 찾아 쓴 통일 교과서를 탄생시켰다.

독일 정치인의 노력
통일의 역사적 경험 사례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독일을 방문하였다. 통일에 관련된 많은 유적 중에 ‘독일연방의사당’을 인상 깊게 보았다. 독일연방의사당 정면에 “독일 민족을 위하여”라는 글씨와 의사당 중앙 홀 바닥에 “민중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독일의사당은 국민들이 의사당을 내려다보게 투명한 돔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의원들에게는 국민들 발밑에서 일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빌리브란트 수상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진심을 주변 나라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정치가이다. 빌리브란트 수상을 포함한 독일 정치인들의 노력은 통일의 중요한 기초를 놓았고, 민족 화해를 위해서 애쓰는 일이 통일로 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독일은 정치 세력 간의 타협과 공존이 몸에 배어있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해서 큰 목적으로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노력과 자세가 무척 부러웠어요. 민주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고 온 셈이지요.”

교실 안에서 광장 만들기
우리는 오래도록 한 줄 세우기 교육을 해오다 보니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습성이 우리들 몸에 배어 있다. 그만큼 우리 마음속에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리나라가 냉전의 첨단에 서 있었고,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경호씨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경쟁이 아닌 공동체성을 갖도록 서로 존중하는 활동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경쟁을 할 때 보다 공동체성을 강화할 때 학생들 전체적 성적이 나아지는 것을 체험해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책을 내고 나서 주변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물었더니 정경호씨는 베란다에 있는 동백나무 화분을 가져 왔다.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를 읽은 고흥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화분이다. 2008년부터 5년 동안 1억에 가까운 통일기금을 모금한 할아버지인데 ‘통일국가 청사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셨다.

▲ 지난해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 출간 후 조례동 호수도서관에서 <한국분단사 연구> 저자인 신용복교수와 정경호 교사가 남북문제와 통일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교사들과 함께 전국 단위의 ‘통일교육연구회’를 만들어 통일의 촉매제역할을 하고 싶다. 통일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되고, 서울에 있는 전문가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니 어느새 평화의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획취재 2팀 / 정리=김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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