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환
학교너머 길잡이
2009년 3월. 교단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한 고등학교 남학급의 담임이었다. 교단에 서기 전에 나는 몇 가지 다짐을 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절대로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였다. 나의 이 다짐은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깨지고 말았다. 나는 내가 처음 매을 들었던 그때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조례 시간이었다. 며칠 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방과후 학습 설문조사 용지를 나눠주었고, 그날은 그것을 가지고 와야하는 마지막날이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애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이 오늘로 깨지는 날이어서 슬프다. 앞으로는 더 이상 매를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날 그 말은 얼마가 지나지 않아 무의미해져버렸다. 그 이후에 나는 야간 자율학습감독을 하면서, 떠드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애들을 불러내 매를 들었다. 그때가 아마 내가 태어나서 누군가를 가장 많이 때려 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나는 교직을 그만두었다. 나의 나약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이상들을 실현해 내기에 학교의 상황이 너무나 힘에 겨웠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내가 교직을 그만 둔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그때 왜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 당시의 나는 ‘매’가 아이들을 다스리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반에 50명, 내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해야 될 학생이 200명이 되는 상황에서 ‘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공포감을 조성해서 아이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된 나는 ‘매’라는 수단을 더욱 손쉽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입교원으로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능력있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 선생님이 학교에서 요구받는 역할에 부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나오고 나서 나는 지금 ‘학교밖’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본 적이 없다. 더욱 신기한 것은 매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안’의 나와 학교 ‘밖’의 나는 똑같은 나인데, ‘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게 달라져 있는 것일까? 어찌보면 ‘매’에 대한 생각은 학교 안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300일 동안 18명의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끌고 스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녔을 때, 몇몇 아이들의 흡연이 문제가 되었다. 그 아이들을 만약 학교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그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매 대신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어긴 사람이 생겼을 때 아이들끼리 끊임없이 회의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잘 자랐고, 흡연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학교에서 만났던 제자들을 가끔 만난다.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 매는 진짜 아팠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그 아이를 때릴 자격이 있었을까? 인간이 인간을 때린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에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내가 때린 아이들을 다시 찾아가 내가 때린 만큼 맞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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