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선
녹동고등학교 교사
교육산문집 <서울여자 시골선생님 되다>
큰 아이가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익숙하고 편한 공간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중순 고입 연합고사를 보았다. 신입생 유치가 어려운 농어촌지역의 고등학교에는 정원 미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신 성적 등으로 미리 지원자를 선별할 수도 있는데 굳이 연합고사를 치루는 지 의문이었다. 시험 당일 감독까지 해보니 실재로도 매우 큰 낭비였고, 듣자하니 중3 교실에서는 입시 준비로 문제집 풀이를 했다고 한다. 실재로 이 고입 연합고사를 치루지 않는 지역도 꽤 있다. 그런데 겨울방학 때 보충수업을 하도록 한 후 다시 2월에 반 배치고사를 보도록 했다. 국영수 시험을 보고 온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엄마, 수험번호가 등수로 되어있었어. 등수대로 앉아서 시험 보고 왔어. 1번은 연합고사 1등인데, 1반 첫 번째 책상에서 시험을 보고, 그러니까 꼴등은 맨 끝 반 책상에서 시험을 봤어.” 

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서

“그래서 애들은 뭐라고 했어?”

“좀 너무한다고들 하긴 했는데.....”

이미 신입생 보충 수업을 수준별로 한 후라 그래서인지 큰 반발은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서열화시키는 학교에 이미 차별이 내면화되어 있거나 포기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 명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했고, 그 학교 전교조 분회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주시길 요청했다. 그 후 교장, 연구부장, 분회장 선생님들이 교장실에 모여 어떻게 된 경위인지 설명하는 등의 협의를 했다고 들었다.

이제 기숙사도 성적순으로 배치할 것이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을 위한 심화반이 운영될 것이다. 학교에 있는 독서실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개방할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결과가 나올 때마다 네이스에서 한 학급의 성적을 출력해서 학생들에게 돌리고, 학급게시판에 붙여놓고 확인하라고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의 성적은 까발려지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수치심과 절망을 느낄 것이다.

등수에 따라 책상에 앉아 몸으로 차별과 인권 침해를 겪은 학생들이 커서 우리 사회의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눈에 보듯 뻔하다. 이런 경쟁 체제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고등학생들은 이제 수업 시간이 되면 책상에 엎드려 잘 것이다.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 풀이가 자기 삶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가 되지 못하고, 지루하다고 느낀 학생들은 교실에서 자거나 딴 짓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것이다. 사교육이나 EBS 강의와 교재에 더 의존해서 밤늦도록 공부하고 온 상위권 학생들도 몸이 힘들어 수업시간에 많이 졸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수업권이 동시에 외면당하는 것이다.

새 학기는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이른 봄 매화가 만발한 것으로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두발과 복장을 단속하는 것으로. 교문 앞에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지키고 있어 학생들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며 시작할 것이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지각하지 않기, 보충수업과 야자 빠지지 않기 등 하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을 신신당부 받으면서 시작될 것이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에서 대기업 면접관이 지방의 어느 특성화 고등학교에 와서 ‘똘똘한’ 여학생을 합격시킨다. 가족들은 대기업에 들어간 딸을 자랑스러워 하며 정답게 밥을 먹는다. 그런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나왔다. 바로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전개는 백혈병 발병, 대기업의 외면과 협박과 회유, 죽음이 이어진다. 학교는 무엇을 했을까, 교사는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생각하니 착찹한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이 아까운 시간에 무조건 드러누워 자면 안 된다. 자기 삶을 준비하는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살아갈 10년 후, 20년 후의 사회는 더욱 불안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제한된 과목의 암기와 문제풀이만이 공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것만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재단하여 서열화시키고 차별하면 안 된다. 한 사람의 학생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 적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 멀리 학생들의 삶을 바라보고 안내하는 것이 공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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