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시인
수 년 전 한 시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시인들은 ‘한 시대의 퇴장’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1980년대 벽두에 처음으로 노동자 문학이라는 영역을 일궈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문단에서 비중 있는 중견시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문단의 노동문학 1세대 기수였지만 이념적이고 정치사회적인 시를 쓰며 투사적 삶을 살다 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정성 짙은 본류의 문학을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북 부안군 변산 출신이며 전주고 1년을 다니다 중퇴한 ‘박영근’이라는 시인인데 가난의 바닥에 있었던 시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비천해지는 것이고 굴욕적인 삶을 사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잃는 것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가난해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가난은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 이 시대의 가장 큰 형벌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시인 박영근은 그런 가난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자본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현대라는 괴물에 저항하며 온몸으로 싸우던 전사였다. 무슨 사상과 조직을 가지고 기획된 싸움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의 일상생활이 그랬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돈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고 어쩌면 자유로웠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 가난은 두려움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박영근 시인 때문에 파출소에 출두한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술자리가 길어져 12시를 넘겨 집에 들어갔는데 파출소에서 급히 출두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박영근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이 한밤중에 순천의 파출소에 있는 것일까. 나는 급히 파출소로 갔다. 그는 서울에서 술 한 잔을 하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내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그는 나의 고등학교 2년 후배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길로 바로 택시를 타고 전남 순천까지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머니에는 최근에 받은 얼마간의 원고료가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어쩌면 한 달도 더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겠지만 택시비로도 모자란 돈이었던 모양이었다. 택시 기사는 술이 취해 횡설수설하는 그를 파출소에 데려갔고, 덕분에 나는 그와 밤새워 술을 마시고 직장에 출근도 하지 않고 내 일상의 그 견고한 틀을 한 번 깰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자본에 길들여져 가는, 그리고 돈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억지를 썼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 그건 억지가 아니라 온몸으로 자본에 저항했던 거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 삶이 이 사회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가 새벽 2시건 3시건 관계없이 걸었던 전화도 그땐 귀찮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본에 길들여져 가는 우리의 일상을 깨우는 것에 다름 아닌 행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자본의 세상에 가난으로 저항했던 이 시대 마지막 순정한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퇴장’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제 그처럼 살아낼 사람도, 그런 저항을 수용해줄 사람도 없는, 참으로 고적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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