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콴유와 싱가포르에 대한 단상 -

▲ 문수현
순천고 교사
리콴유와 싱가포르에 대한 선입견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일부를 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 보낸 나는, 같은 시기 싱가포르 리콴유(이광요) 수상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싱가포르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고 깨끗한 나라로 만든 훌륭한 지도자였다. 지도자가 청렴하고 솔선수범한다면, 그래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면 다소 강압적으로 통치하더라도 괜찮다고 나는 생각했다. 껌을 거리에 뱉으면 몇 십만 원의 벌금을 내는 것도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의할 수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없고,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을 마음대로 체포, 구금하고 고문과 사법살인을 자행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한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나는 싱가포르를 부러워했다.

얼마 전, 설을 쇠고 학생들과 함께 3박5일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제주도의 3분의 2 정도 되는 면적에, 550만 명가량의 다민족이 살고 있다는 싱가포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국가였다. 술집이나 노래방, 음식점, 광고판 등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건전하고 건강한 나라라는 느낌도 들었다.

현지에서 본 리콴유와 싱가포르
가이드가 싱가포르를 ‘클린(Clean), 그린(Green), 파인(Fine)’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람, 거리, 차량, 즐비한 서구식 고층빌딩과 일반 건물들은 모두 세련되고 깨끗했다. 도시는 푸르고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도시 전체가 순천국제정원박람회보다 더 자연스럽고 생활화된 진짜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파인’은 중의적(重意的)이다. 훌륭하고 멋지다는 뜻이기도 하고, 벌금을 의미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40만원에서 8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신호를 위반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차를 가지고 기름값이 싼 이웃 말레이시아로 갈 때 기름을 3분의 2 이상 채우지 않고 가면 100만 원 가까운 벌금을 내야 한다. 아직 태형(곤장) 제도가 남아 있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국가경쟁력이나 반부패지수가 세계 1~3위에 들 정도로 좋은 나라다. 부패척결을 위해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을 만들었으며, 죽마고우인 국가개발부장관을 부패혐의로 처벌한 리콴유는 훌륭한 지도자다. 국민 소득 5만 달러인 나라, 깨끗하고 푸르며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르는 나라, 싱가포르는 좋은 나라다.

위에서부터 강제하는 질서와 청결
그런데 그것이 시민의 자발적 의사와 동의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권력의 억압과 감시의 산물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싱가포르 정당정치는 형식적이어서 야당이 성장할 수 없게 억압한다고 한다. 올해 91세인 리콴유는 30년 이상 집권하였고, 현재 총리로 재직하고 있는 리센룽은 그의 아들이다. 장기집권에 일종의 권력 세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유명한 김대중-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쟁 시 리콴유는 “아시아인에게는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떠오른다. 리콴유는 박정희의 열렬한 팬이었다.

2012년 싱가포르의 언론자유도는 179개국 중 149위이다. 어떤 교수가 싱가포르 정치에 대해 완곡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해직되었다고 한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거리에는 사복 경찰(형사)이 깔려 있다고 한다. 유신독재 시절의 한국 풍경과 겹친다.

내 안의 파시즘을 넘어
나는 한 때, 국민을 잘 살게 해 주고, 깨끗하고 질서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한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철권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내 안의 파시즘’이었음을 뒤에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시 유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음흉한 독재의 씨앗을 품은 위험한 주장이다. 우리는 모습이 어떻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억누르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권력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독재정권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으로 더불어 내 안의 독재도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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