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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찬하게 잘하고 싶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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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승인 2014.02.12  1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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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찬하시”라는 전라도 말이 좋아 아들 이름을 ‘류솔찬’으로 지었다는 충청도 출신 류정호 씨를 만났다. 24년 전, 순천으로 유학을 오며 줄곧 순천에 살았으니, 이제는 순천 사람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지만 뼈에 박힌 충청도 사람의 특성 때문에 말 못할 사연이 많다. 그는 순천대학교 앞에서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는 파란직업전문학교 교장이다. 10여년 교육 사업을 해왔지만 집도, 차도, 살림살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그의 사업실패기를 들어보자며 휴먼라이브러리 팀에서 찾아갔다.

그 놈 참 잘 살겠네
어려서부터 “그 놈 참 잘 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시절은 데모와 탈패 활동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냈는데 탈패는 탈춤, 마당극, 집체극, 풍물굿 등 몸과 머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는 활동이라 스스로도 못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하고 싶은 일만 찾아서 했다. 녹즙배달, 자동차매매, 보험영업, 버스 운전도 해보았다. 6개월마다 직업이 바뀌었다.

   
▲ 파란직업학교 류정호 교장
버스운전을 한 배경도 독특하다. 대학시절 탈패 전수를 갈 때 산골짜기에서 사람을 잔뜩 태운 트럭 뒤에서 공기를 가르며 목청껏 노래하며 다녔던 시절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사람들 태우고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군 제대 후 곧장 안양에서 버스운전을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반가워서 손님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활기찬 목소리만 들어도 손님들이 좋아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져서 손님들이 호떡 같은 간식에서 과일까지 챙겨주는 분들이 생겼다. 버스 안에 주로 민중가요를 틀고 다녔는데, 간혹 “노래 잘 들었다”며 지긋한 눈빛을 전하며 내리는 분도 있었다.

뭉쳐 노는 것이 통한 직업학교
지인의 추천으로 간 직업학교. 그 직업학교는 임시 휴교 후, 다시 시작한 상황이라 복잡했다. 인수인계 과정도 없이 사람을 뽑고 행정업무에서 영업까지 전반을 맡아서 했다. 당시 이사장은 첫 만남부터 믿음을 강조했는데, 두 달 정도 월급이 나오더니 그 뒤로 월급이 안 나왔다. 그래도 이사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월급도 못 받는 상태에서도 일을 했다.

당시 교직원은 10여 명이었는데 뭘 해도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한 번은 문도 안 닫히는 버스를 빌려 학생들과 소록도에 놀러갔는데 교사들까지 아주 좋아했다. 월급도 안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직원들끼리는 잘 뭉쳤다. 돈도 없으면서 1주일에 몇 번씩 술자리를 했고 형편도 빤한데 술값은 서로 내고 싶어 했다.

월급 때문에 했던 이벤트도 있다. 보름 뒤에 준다고 한 월급이 안 나오는 날 아침 직원들 볼 낯이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던 중 슈퍼에서 파는 복권을 본 류정호 씨, 조회시간에 3억짜리 복권을 한 장씩 나눠주며 “당첨되면 반은 갖고, 반은 직업학교 만들어 봅시다”며 하루를 시작했다. 운영비도 안 나오는 학교에서 자신의 카드로 회사에 필요한 용품도 사고, 생활비까지 쓰다 보니 어느 날 카드 한도가 찼다. 그렇게 숨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직원들과 새롭게 준비한 과정이 승인이 났다. 안정을 찾자 놀랍게도 이사장이 출근을 시작했다. 더 이상 이사장의 비위를 맞추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출발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업교육원에서의 몇 달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 광양 중마동에 직업학교를 열었다. 당시 35세 뭐든지 열심히 했다. 살면서 꼭 필요한 소중한 내용을 직업교육에 넣고 싶었다. 그 자신이 가장 재미있었던 대학시절 탈패 경험을 교육과정에 넣었다. 학생들과 조회, 종례를 하고, 발표도 시키고, 매달 특강과 함께 특별활동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했던 체육대회, 산행, 역사기행 같은 특별활동은 노동부에서 전혀 지원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교육생들은 아주 즐거워했는데, 종교처럼 몰입하게 된다는 말도 했다. 1년 정도 지나자 작은 도시에서 입소문만으로 모집이 잘되었다.

강사는 최상의 강사를 구했다. 한 번은 독일에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비행기 비용을 주고 면접을 오라고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과정이 첫 기수부터 혼연일체가 돼서 돌아갔다. 상상할 수 없는 취업률이 무려 5년 동안 이어졌다. 직업학교는 취업률, 자격증 취득률 등으로 노동부에서 인센티브를 받는데 그가 운영하는 직업학교는 80% 이상 취업 되었으니 거의 인센티브 대상이었다. 교육에 쏟았던 열정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됐다.

   
▲ 힘든 과정을 거쳐 왔지만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이야기 나누는 류정호 교장
인생사 새옹지마

한참 잘 될 때 임대한 공공건물의 임대사업자들이 자신들이 비슷한 사업을 하려고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했다. 엄청나게 투자하며 키워왔는데 그 억울함이 오죽했을까. 억울함을 호소하고 수료생,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국민감사청구를 했다고 한다.

그때서야 임대사업자가 찾아와 “취소해 주면 무엇이든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600여명의 서명을 받은 감사청구를 어떻게 되돌릴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인테리어 비용이라도 받아보라”고 했지만 그의 아내가 완고하게 정리하자고 했다. 억울함을 참을 길 없었던 그는 미니포크레인과 인력을 구해 내부를 깨끗이 정리했다. 그러자 상대는 파손을 시켰다며 고소까지 했다. 당시에는 일이 왜 그렇게 꼬였는지.

광양에서 10기까지 교육생을 배출하고 순천으로 이전을 했다. 손실이 컸지만 어쨌든 다시 일으키려고 분투했다. 주변의 선배들이 흔쾌히 도와줬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이전을 해서 인테리어를 마친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 울고 싶은 심정인데 노동부의 제도까지 바뀌었다. 기존 시스템과 조직은 방대한데, 바뀐 시스템에서는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고마웠던 노동부직원을 찾아갔더니 “파란직업학교는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기관”이라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그 말에 또 힘을 얻고 아등바등 해나가고 있다는 류정호 교장에게 물었다.

“요즘은 경영스타일이 바뀌셨나요?”

그는 요즘은 어떤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해서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한 그대로 움직이면 돈이 엄청나게2 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우리 같은 규모에서는 생산자협동조합 형태가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노동부 제도가 바뀌거나 회사에 변화가 있을 때 상처가 컸어요. 강사가 모두 주인처럼 운영하는 형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 온 파란직업학교는 이제 모두가 주인이 되어 운영해 보는 민주주의를 실험해 보려고 한다.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류정호 교장의 앞길이 다시 확 트이길 두 손 모아 본다.

기획취재 2팀/정리: 박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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