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봉두마을을 둘러싼 송전탑
암, 심장질환으로 34명 사망, 9명은 투병 중
며칠 전 순천언론협동조합 사무실에 율촌 봉두마을 주민들이 찾아왔다. 지난해 가을, 봉두마을을 지나가며 내걸린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었고 핵발전소문제와 송전탑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지 못했었다.
1970년대 초반 율촌면 봉두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설 때 마을 사람들은 전기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좋기만 했다. 동양에서 제일 큰 것이 봉두마을을 지나간다고 자랑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마을 사람들 중 암에 걸리거나 신경계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34명이고 현재 9명이 투병중이다. 막연히 송전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최근 또다시 한전에서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346Kv 송전선로 아래서 전기도 없이 불이 들어와
27일 밤 10시, 여수 봉두마을에서 송전탑 아래 형광등을 들고 실험을 했다. 며칠 전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대에 설치된 765kV 송전탑 아래에서 전기도 없이 형광등에 불이 들어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마을 어르신들이 김아무개 할아버지집 뒤 텃밭에 모여 거대한 철탑이 어둠을 뚫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곳에서 형광등을 치켜 올렸다. 잠시 뒤, 345kV 초고압 송전선 아래에 놓인 6개의 형광등이 빛을 발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할머니 한 분이 큰소리로 외친다.“워매, 불 들어온다. 이런디서 어찌 살겄어?”
주민들의 요구
술렁이는 마을
현재까지 송전탑과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는 입증되진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마을을 온통 휘감고 있는 송전선로에서 나온 전자파로 전기도 넣지 않은 형광등에 불을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이 모습을 바라본 마을 사람들이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다.
불안한 주민들이 정부에 호소했지만 정부는 한전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 사이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가고 있다. 지난 30여년 간 정부와 한국전력은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과 압도적인 물리력을 이용하여 전국 방방곡곡 대용량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초고압전류를 힘없고 약한 시골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관통하여 대도시와 산업시설로 보내는 전력시스템을 유지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 안전하다고 하니 안전하겠지, 설마 국가가 우리를 속이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이런 불합리한 송·변전 시설들이 들어서는 것을 용인해주었고, 그것이 안겨다주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왔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지금껏 자의적인 보상과 주민 회유, 반대 주민들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을 통하여 방방곡곡에 초고압 송전탑과 변전소를 지어왔다.
발전소, 더 지어서는 안돼
28일 오후에 순천, 여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봉두마을에 들렀다. 주민들은 찾아주어 고맙다며 저마다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마을 주민 김영종(77세)씨는 “밀양 문제를 듣고 송전탑이 해가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암이랑 중병으로 많이 죽어 부렀어요. 전기도 편리하고 좋지만 사람을 죽여 가며 하믄 되겄어요? 국민을 죽이면서 성장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겄습니까?”
순천 곳곳에도 아파트를 사이에 두고 송전탑이 흐르고 있다. 남의 문제가 아니다. 여수 YMCA 김대희 정책기획국장은 “밀양을 통해 도시 사람이 편하게 쓰는 전기로 인해 수많은 농어촌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원전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우리 아들 일자리는 어쩌냐는 항의가 들어온다. 사회적인 합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은 전기를 아껴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