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거리로 나선 무속인 김정화 씨

 
문화의 거리 빨간바지 아줌마

내가 내가 아니야.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되고, 하려해도 안 되고, 자주 몸이 아프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터지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내 몸이 하는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어.

무속인 김정화 씨가 20여 년 동안 함께 했던 종교(기독교)를 중단하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된 계기였다. 연애소설보다는 탐정소설을 더 좋아했고,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고, 남자 복장을 즐겨 입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건강하시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임종을 미리 예감했었다. 남들은 그저 영리하고 똘똘한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역시 ‘내 안에 다른 세계’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기간 동안 문화의 거리는 매일 축제가 열렸다. 이 거리를 찾았던 사람은 한 번쯤 보았을지 모른다. 행사장이 열리고 음악이 흐르면 주저 없이 춤사위를 펼치던 한 여인. 사자머리에 항상 빨간바지를 입고 한껏 흥을 돋우기 위해 박수치고 스텝 밟던 해맑은 웃음의 한 아줌마.

문화의 거리 빨간바지 아줌마로 통하는 김정화씨는 이 거리에서 ‘사주예감’이란 천막부스를 펼치고 행인의 속사정을 들어주는 무속인이다. 법당이 문화의 거리로 입주하게 되고 이곳 상인회와 함께 일을 하면서 정원박람회 행사와 더불어 법당출장소를 차린 것이다.

“광양에 있다가 순천을 왔는데 순천대학교가 마음에 자꾸 들어오는 거에요. 아무 조건 없이 그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학교 캠퍼스에 앉아서 무작정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구요. 안되면 학교 앞에 이동차량을 두고서라도 학생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학교를 둘러보는데 여기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이더란다. 그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고 싶었단다. 하지만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젊은 사람이 좋아요. 에너지가 많잖아요.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 에너지가 저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에너지는 좋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잖아요. 사주를 아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에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헤매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야할 길, 잘 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내 일이에요. 나는 잠깐 그들의 거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눈 밑에 뭐가 묻었는지, 입가에 밥풀이 붙었는지,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를 말해주는 것, 그래서 좋은 모습으로 길을 갈 수 있도록 말해주는 것이죠.”

김정화씨는 주로 25세에서 35세의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러고 싶어 한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 애정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력자가 되고자 한다. 어쩌면 무속인의 마음을 넘어선 엄마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들 하나, 딸 셋을 둔 엄마이기도 하니까.

부스를 찾는 깍아머리 젊은이를 보면 군대 간 아들이 생각나는 김정화씨. 화장품 사업을 10년 넘게 해오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평범하게 사는 듯 했지만 이유가 없이 몸이 자주 아팠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버리게 되는 주변 상황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종교나 머물고 있는 곳과는 전혀 상관이 없더라구요.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하지요. 정신 나갔다고 해요. 사실 정신 나간 게 맞지요!”

부스를 칠 때 설레인다

내림굿을 받기까지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미쳤다고 말릴테니까. 미친 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이 길을 가지 않으면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처럼 살았을 것 같아요.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려고 하니까. 나를 지키고, 내 가정을 지키고, 내 자식을 지키고,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이죠” 그 길 위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를 15년. 지금에야 가족이 조금은 이해해 주는 것 같다고 한다.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힘들어하는 영혼을 달래주고 싶은 건 아닐까.
신의 세계까지 살아야 하는 김정화씨는 삶이 힘들다. 사람의 마음도 풀어 줘야하고, 영혼의 마음도 풀어줘야 하고, 신의 마음까지 풀어줘야 하니 고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설렌다. “남들은 연인을 만날 때 설레지만 저는 사주부스를 칠 때 마음이 설레요. 오늘은 누가 나를 찾아올까.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미지의 세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 기대되고 설레요.”

 
▲ 지난 정원박람회 기간부터 문화의 거리에서 ‘사주예감’ 천막부스를 열고 있다. 길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문화해설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식당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주변의 수근거림도 있었다. 종교인이 찾아와서 언성 높이기도 했고, 1만원의 사주상담으로 어쩌려고 하느냐, 행사 중에 떼돈 버는 것 아니냐. 김정화씨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을 지키려고 가는 것 뿐이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것이죠. 남편이 벌어주기도 하니까(웃음)”

문화의 거리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사주부스의 불은 계속 켜져 있다.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 “겨울이니까”로 간단하게 답한다. “나도 손 시리고, 발도 시리고 춥지요. 하지만 그 추운 날에 다급한 사람이 온다는 거에요. 그 와중에도 나를 찾는 사람이 오기 때문에 부스를 지키고 있는 것이죠”

공부하는 것이 노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하고 있는 것이 행복한 무속인 김정화씨의 목표는 순천대 철학과 석·박사 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의 천막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이른다. 사는 건 산에 오르는 것이다.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묵묵히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2014년 순천의 기운은 무지개로 보여진다고 한다. 밝은 한 해가 기대되는 순천이다. 순천의 관광거리로 거듭나고 있는 문화의 거리. 그 곳에서 김정화씨는 올 해 행동 사랑상인회 ‘문화의 거리 행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마른 가지에 새 순이 움틀 즈음 문화의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을 빨간바지 아줌마의 힘찬 스텝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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