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순천만요양병원 햇살병동 천사 이수옥님

176가지 치매 증상
“치매 증상이 176가지가 된다고 해요. 통증으로 오는 경우, 성적으로 오는 경우, 근력으로 오는 경우 등 모두 다른 증상들을 갖고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았던 때, 아니면 가장 가슴 아팠던 때로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요. 어떤 분은 가장 행복했던 25살에 머물러 있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바람난 남편 찾는다고 돌아다니는 분도 있어요.”

한 시도 마음 편히 앉아 있지 못 하고, 늘 귀를 열어두고 병동 이곳 저곳을 살피는 순천만요양병원 햇살병동에 김치아줌마로 불리는 이수옥 요양보호사(55세)를 만났다. 햇살병동은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입원해 계시는 곳이다. 식사수발하며 김치 찢어서 밥에 올려주고 했더니 김치아줌마로 불린다는 이수옥씨는 요양병원 치매어르신들의 말벗이 된 지 5년째다.

 
이수옥씨는 서울여자다. 전라도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여수에 살며 장사를 오래 했다. 친정인 서울 생각만 하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서울과 여수는 너무 달랐다. 그러면서 빚을 많이 졌다. 장사 실패와 남편과의 불화가 커지면서 너무 힘들어 우울증을 겪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보따리 싸들고 친정(서울)으로 떠났다. 하지만 아이 생각에 어쨌든 살아보자 마음을 먹고 다시 내려왔다.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었을 때 TV에서 가사간병인 모집공고를 봤어요. 동사무소에 무작정 찾아가서 살기 힘드니 공공근로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자리가 없다고 해요. 그러면 TV에 나오는 가사간병인은 할 수 있냐고 했더니 며칠 뒤에 연락이 와서 장애인 가사간병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오랜 세월 장사만 했던 사람이라 분야가 너무도 다른 간병인 일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석 달간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살기위해 버텨야했던 3개월.

“그렇게 석 달이 지나고나니 밥이 먹어지더라구요. 변을 치우고 나서도 그 자리에 뒤돌아 앉아 자연스럽게 밥이 먹어져.”

간병인 일을 하면서 자신을 많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남편도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결혼하면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아야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벗어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벼랑 끝에서 시작했던 간병인 일은 남편을 한 남자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과 10년을 생활하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회의감이 들더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일이 요양병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과 발이 되는 일이었다.

“나름 좋아요. 어르신들이 엉뚱한 얘기를 할 때가 많지만 그것 때문에 웃기도 하고 엔도르핀이 돌아요. 또, 내 손길이 한 번 더 가서 깨끗해지고 달라진 모습을 보면 보람도 느끼고, 힘들 때도 있지만 좋아요.”

이수옥씨는 하루가 부산하다. 오전에는 어르신들 목욕을 시켜드리고, 기저귀를 수시로 봐야하고, 세탁물 관리, 식사수발 하면서 시시때때로 말동무가 되어야 한다. 어르신들과 생활하려면 만능이 되어야한다는 이수옥씨. 노래도 잘 해야 하고, 춤도 출 줄 알아야 한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호응을 해줘야하기 때문이다. 이수옥씨는 이·미용도 할 줄 안다. ‘바리깡’ 하나로 남자분들 머리도 다듬어 드린다.

때로는 딸, 때로는 며느리, 때로는 손님

 
“내 부모라면 못할 것 같아요. 일이니까 해지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반복 질문을 하거든요. 또 여기 저기 수도꼭지를 틀어놓는다거나 하는 수시로 발생하는 행동들을 매번 따라다니면서 돌봐야 해요. 그러다 보면 짜증이 나죠. 하지만 이 분들에게 짜증을 내면 안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비워야 할 수 있어요. 봉사한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못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어르신들을 모시다보면 이수옥씨 마음이 애잔해진다. 젊어서 나름대로 잘 살았을 것 같은 분들이 늙어서 병원에 들어올 때는 외투 하나, 바지 하나, 팬티 두 장에 양말 두 켤레 뿐이더란다. 제대로 된 옷 하나 없는 사람도 많다. 서글픈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젊었을 때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사고, 자신을 위해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끼다가 똥 된다’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들이 시대적으로 가장 힘든 세월을 살았을 것 같아요. 너무 가난해서 못 먹고, 못 입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말도 못하고, 두들겨 맞아도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그런 억눌린 삶이 나이 먹어서 치매를 통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여자와 남자는 치매증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나요. 여자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남자는 대체로 성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요. 모성애나 동물적인 욕구는 치매가 와도 본능인 것 같아요.”

이수옥씨는 유방암 말기에 있던 한 할머니를 떠올렸다. 가슴에서 피고름이 줄줄 흐를 정도로 상태가 나빴던 할머니를 잠시 돌봤던 일이 있다. 너무 가난한 세월을 살았던 할머니는 구걸을 해서 혼자 몸으로 아들 셋을 키웠다. 하지만 유방암 말기에 치매까지 앓고 있는 어머니를 모실 만한 변변한 자식도 친인척도 없었다. 통증을 느끼지도 못하고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살았던 이 할머니는 늘 자식 걱정이었다. 아들 장가 좀 보내달라고. 여자는 아들보다 똑똑하면 안 된다고. 그래야 아들이 무시 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며 강한 모성애를 보였다고 한다.

때로는 딸이 되었다가, 때로는 며느리도 되었다가, 어쩔 때는 물건을 사는 손님이 되기도 하면서 항상 치매환자의 말동무가 되고 있는 이수옥씨. 아직 집을 가지지 못해 임대에 살고 있지만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올해 목표이다.

“이 일은 60세까지만 하려고 생각해요. 좀 더 젊었다면 복지 일을 하고 싶었는데 늦게 알게 돼서 그 점이 아쉬워요. 이·미용을 좀 더 배우고, 국악도 배워서 60세 이후에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수옥씨는 요양보호사를 한 마디로 ‘천사’라고 표현한다. 당신이 천사라는 것이 아니라 천사같은 마음과 봉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해야 하고 혹시나 환자분들이 다니시다 넘어져 다칠까봐 마음이 늘 조마조마하다. 이수옥씨는 현재 우리나라 요양보호사들이 고생하는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앞으로 달라진다고 하더라.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희망과 기대를 안고 사는 이수옥씨. 오늘도 위태롭게 일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축하기 위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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