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내 친일잔재 청산 성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야

“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광정이 없는 한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 - 임종국 선생 유고 中 -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충혼비’는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을 추모하는 석물로 칼처럼 끝 모양이 뾰족한 양식이 특징인 비석이다. 이 일본군 ‘충혼비’ 양식의 비석이 개교기념비로, 은사님 송덕비로, 학교교훈비로 더러는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비석으로 교내 양지바른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해방 후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사회는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친일파가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해왔다. 그들이 부끄럼 없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대를 세우는 모습이 교정에서 본, 날선 ‘충혼비’와 닮아있다.

 

▲ 글자만 바뀐 황국신민서사비

 

 순천의 유서 깊은 한 고등학교.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서사비’가 교정에 세워졌고, 등교하는 학생들은 이 비에 고개를 숙이고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로 시작하는 ‘황국신민서사’를 암송‧제창했다. 해방 후 청산 되었어야 할 ‘황국신민서사비’는 글자만 바뀌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승만 정부 12년간 경찰 총경 70%, 경감 40%, 경위 15%가 일제경찰 출신이었고 군대 육군 참모총장 8명 모두가 군복만 갈아입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었듯.

 

 학교엔 일본식 석등도 많았다. 불교와 함께 전래된 석등이지만 우리나라는 ‘석등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이고 고유한 석등을 풍부하게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어떻게 학교에 일본식 석등이 들어왔을까? 우리나라는 질 좋은 암석이 풍부하고 손재주 좋은 석공이 많아 일본에 석물을 수출했는데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로 수출길이 막히자 이 석물들이 국내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 천 년을 이어온 문화유산이 계승의 미를 멈추고 일본풍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전라남도교육청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학교내 친일잔재청산 T/F팀’을 구성했다. 전수조사를 벌여 도내 169개 학교에서 일제 양식의 각종 석물과 교표, 친일음악가 작곡 교가, 일제식 용어가 포함된 학생생활규정 등 175건의 친일잔재를 확인했다. 확인된 친일잔재는 일제 양식의 석물 34건, 친일음악가 제작 교가 96건, 학생생활규정 33건, 교표 12건 등이다.

 

 이후 석물 주변에 안내문을 설치해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새 교가를 제작하는 등 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석물 16개가 놓여 있는 현장에 친일잔재임을 확인하는 안내문을 설치했다. 이는 해당 석물이 일제식민통치 협력자의 공적비이거나 일제식 양식임을 알려 학생들의 역사교육에 적극 활용토록 하기 위함이다.

 

 

친일음악가가 제작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14개 학교에 대해서도 예산을 지원해 교가를 새로 제작하도록 했다. 10개 학교는 제작을 완료했고 4개 학교는 진행중이며 제작이 완료된 학교의 교가는 내년 1∼2월 중 열리는 2019학년도 졸업식부터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친일잔재 용어가 포함된 학생생활규정 전체를 수정·보완했고 욱일기 양식의 교표도 시대에 맞게 학교 자체적으로 8개교가 수정 보완했다.

 

▲ 욱일기 양식의 교표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몇 십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친일 얘기를 하느냐는 분도 있다. 그러나 친일잔재청산 T/F 활동을 통해 학교를 둘러보며 아직도 일제잔재, 친일의 흔적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고름이 살이 될 수 없듯이 지금이라도 짜내야한다.

 

 가까운 나라로 미래의 동반자가 되어야지 언제까지 과거에만 얽매일거냐는 분도 있다. 이는 침략자 일본과 친일에 기생해 살아온 자들의 논리이다. 일본의 아베총리는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성전’이라며 미화하고 호시탐탐 우리의 영토 독도를 넘보고 있다. 일본 청소년들은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일본 TV에선 혐한이 도를 넘고 있다. 이쯤 되면 도리어 누가 과거에 얽매여 있는지 되묻고 싶다.

 

 35년간에 걸친 가혹한 식민통치의 결과, 우리 민족은 막대한 물적 인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일제의 치밀한 계획아래 우리의 정신문화도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학교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도 많은 유무형의 친일잔재가 우리 곁에서 정신문화를 지배해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일상 속의 언어와 전문분야의 용어에도 일제잔재가 남아 있으며 놀이문화와 풍속, 지명 등에서도 쉽게 식민지시대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사회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잘못된 역사 잔재는 청산해야 한다. 우리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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