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기 - 김계수조합원]

 

올 봄에 이어 가을에도 순천시에 의해 귀농 교육(정식명은 귀농귀촌길잡이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농촌에 기반을 둔 기초지자체들이 인구 감소로 인해 귀농인 유치에 적극적인 데 반해 우리 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그 동안 귀농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던 것이 아쉬웠었다. 이번 일은 경제 성장의 한계와 임박한 기후 재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농촌에 있다고 생각하던 터라 꽤 반가운 일이었다. 수강신청자도 정원을 초과했다. 봄에는 타 지역의 단체가 교육을 대행했지만 이번에는 지역의 한 협동조합이 사업을 위탁받아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고, 나는 ‘귀농귀촌의 올바른 이해’라는 제목으로 교육의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생의 2막을 설계하려는 사람들에게 선배 농사꾼으로서 농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그것도 첫 시간인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으로 농사를 그리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개별 농사꾼의 농사는 품목이나 가치 지향에서 편향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구체적인 내 농사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수강생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귀농이라는 낱말에서 ‘농’은 농사, 농업, 농촌 중 어느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셋 중에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일에는 귀촌이라는 말이 따로 쓰이고 있고, 전적으로 농사일에 종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논외로 치자. ‘농’의 의미를 농사와 농업 중 어느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다른 말인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을 이르는 말인가.

‘농=농업’이라는 입장은 농사일을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제적 생산 활동, 즉 여러 가지 산업 중에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경우 농사일을 하는 목적은 생산 요소를 보다 적게 투입하고 그로 인한 산출은 최대로 늘리는 것, 즉 수입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이 때 일이 현명하게 이루어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효율성, 곧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이다. 농사‘일’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으로, 성능이 좋은 농기계나 임노동을 고용해서 산출을 크게 늘릴 수 있다면 당연히 마다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최대한 적게 움직이고 수고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일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투입과 산출을 계량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화폐의 액수로 표시될 때 결과에 대한 분석, 비교, 판단이 명확해진다.

반면에 ‘농=농사’로 생각하는 경우 농사일은 삶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이자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과정 자체이다. ‘농=농업’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농사일이 별도의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인 데 반해 여기에서 농사‘일’은 농사꾼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근거다. 인간은 다른 인간은 물론 사물들과 더불어 무수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면서 이를 변화시킴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존재가 된다. 관계의 형성, 유지,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일이다.

올해 100세를 맞는 동네 노인이 드디어 평생 농사꾼으로서의 이력을 마감했다. 서울에서 부자로 사는 아들 집에 추석을 쇠러 올라가셨다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계시다. 몇 년 전까지 소 쟁기질로 농사를 짓고 손수 땔감을 구하고 꼴을 베어 소를 먹이다 힘이 부치면서 차츰 일을 줄여오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손바닥만 한 들깨밭을 붙들고 계셨다. 당신 손으로 거름내고 땅을 일궈서 뿌린 씨앗들은 당신의 보살피는 손길로 열매를 맺고, 밭둑 또한 무릎 꿇고 기다시피 하며 낫질을 한 후에 반듯하고 깔끔한 자태를 드러낼 수 있었다. 한사코 인연을 끊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기꺼이 짊어진 책임이 그 분의 일백 년 삶을 지탱한 원동력이었을 게다.

▲ 김계수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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