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라면2] 강범식 조합원 광양제철고 교장 난 ‘광화문 통 아이’ 출신이다. 재수를 하던 1976년 나는 공식적으로 얻은 ‘좌절감’과 ‘애매한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맘껏 놀자니 괜히 찜찜하여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던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상에서
박발진 편집위원 이번 호부터 ‘순천의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기획을 통해 지역문화 현장을 일구는 개인과 단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는 개인이나 사회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적인 힘이며, 물질적 풍요가 타락으로 흐르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매체라고 믿는다. 퀴즈 하나! 순천에 매일 클래식 음악
나의 고향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이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 시흥동과 독산동을 오갔었다.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독산동에 살던 때다. 겨울이었다. 부모님과 형과 나는 일요일에 산에 가기로 했다. 관악산이 가까워서 종종 갔었다. 근데 토요일에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늦게 오셨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늦게 일어나신 아버지는 미안하셨는지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화재가 확산된 다음날 새벽 3시, 출동 가능한 인력의 3분의 1을 출동시키라는 지시가 순천소방서에도 떨어졌다.서면119안전센터와 승주119안전센터에서 2대의 소방차와 5명의 소방공무원들이 8시간을달려 강원도 산불 진압
[인터뷰] 강원도 산불 지원출동한 순천소방서 서면119안전센터 문금식 팀장 “새벽 3시, 8시간을 달려 강원도에 도착했죠.”4월 4일 저녁 7시쯤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화재가 발생한 저녁인, 4월 5일 새벽 3시, 그날 출동 가능한 인력의 3분의 1을 출
2018년 한반도에는 남북정상들 만남으로 남북 평화통일과 민족 번영의 길을 열어가는 씨앗이 뿌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통일 트랙터 품앗이 순천운동본부 윤일권집행위원장을 만났습니다. -편집자주- 안녕하십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먼저 통일 트랙터 품앗이 운동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통일 트랙터하면 시민들에게 생소하고 우리의
나이 들어가면서 그리운 것은 유년시절의 고향이다. 내 고향은 하루 두 번 여객선이 기착했던 나로도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언덕으로 올라가면 떠나는 여객선이 보였다. 뱃고동 소리를 흉내 내다가 밭도랑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슬프게 울었다. 나중에는 서로 부끄러워 웃다가 빈 바구니만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왜 울었을까? 떠나는
“두 발을 딛고 자유롭고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사는 방법을 알고자 할 때 사람들이 명상과 마음 챙김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지금 내 마음이 천국인가’ 질문해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죠.” 사그락 용미중 대표의 말이다. 사그락(思그絡)은 ‘마음을 그와 잇다’라는 뜻으로 일상생활이 예술로 디자인되는 삶속에
아버지는 지금도 일을 하신다. 많이 배우지는 않으셨지만, 눈썰미가 좋으셔서 전기, 토목, 보일러 등 웬만한 기술자들이 하는 일들을 잘하셨다. 덕월동에서 오랫동안 고물상을 운영하셨는데, 작은 재료, 물건 하나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으셨다. 본인에게는 동전 하나도 아끼시던 분이었지만 일 마치고 집에 오실 때 우리 남매를 위해 꼭 작은 군것질거리라도 사 들고 오
저는요...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옥 같아요. 제 기분은 꼭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해요. 정말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요.저희 부모님은 눈만 마주치면 싸움을 하세요. 자주 언성을 높이시고, 또 크게 싸우시는 경우도 많아요. 부모님은 저희에게도 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세요. 엄마는 동생과 절 보시고
정근이내 이름은 정근이다. 성은 없는 것 같다. 나의 기품 있는 외모에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지만 누나가 지어준 이름이다. 사실 친누나는 아니다. 나는 원래 고아인 것 같다. 언제부터 혼자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우리 동네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먹이 사냥(알고 보면 구걸)이 쉽다. 학교 후문 쪽에 횟집이 있는데 으슥해지면
저는요...학교에 가면 몇몇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나만 놀리고 괴롭혀요.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날 가지고 놀리거나 장난을 치고, 어떨 땐 때리기도 해요. 내가 전학을 가버리든가, 그런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학교 가는 게 너무 싫고 지옥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죠??이러면 어떨까요 친구들에게 항상 시달리고,
택배가 왔다.열어보니 구두다.둘째가 보낸 어버이날 선물인가보다. 5월 8일에 도착했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엄마 사랑해요.’라고 짧게 카드라도 한 장 적어주지는…나는 아들이 둘이 있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곰살맞고 다정해서 어느 집 딸보다 사랑스러웠다. 공부도 곧잘하고 목소리가 맑아서 노래를 잘했었다. “엄마! 목말라요. 엄마! 주스 주세요.
“지역사회와 시대의 과제에 동참하겠다” ▶ 전남동부NCC를 창립하게 된 계기는?2017년 순천시 청소년노동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순천기독교총연합회(이하, 순기총) 소속 일부 목사들의 편향적인 주장과 집단행동(순천시청 앞 조례 반대 집회)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 보수적인 단체의 모습이 기독교 전체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모습을 보면서 조례를 찬성하는 순천지역 목
저는요...안녕하세요. 저는 고2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아이가 1년 전부터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닙니다. 폭주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빈집털이를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집주인과 합의가 돼서 더 큰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지금도 아이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늦게 귀가하고 학교
저는요...저는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입니다. 저 자신도 별로 여성스럽거나 얌전한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약간은 거친 친구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애들과는 친한 편은 아닙니다.얼마 전에 그런 친구 중의 한 명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싸움하는 도중에 심한 욕설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강수화 씨(35세)는 순천시 용당동이 고향이다. 3녀 중 장녀로 부모님은 맏이인 그를 지원하고 응원해주었다. 수화 씨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기억에 남는 ‘피터팬’수화 씨가 어렸을 때 엄마는 계몽사에 다녔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빠 역시 문학을 좋아해서 집에는 책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주로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냈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아프리카 속담이라고도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속담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함께보다는 혼자 달리는 경주를 하고 있다. ‘누구보다 더! 누구보다 잘!’ 이 아닌 함께 이루어 가는 연습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 어린이들은 어디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저는요...저는 고1 여학생입니다. 학기 초에 선배들이 주선한 미팅을 나갔는데 나온 남학생 중에 한 명이 저에게 “꽃돼지 왔다.” 그러는 거예요. 전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나와버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렇게 살쪘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어른들이 귀엽다고 해서 늘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그다음부터 어
저는요...저는 저는 고3 남학생의 학부모입니다. 제 아이는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목표도 없는 아이 같습니다. 가고 싶은 학과도 없고 대학에 꼭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그저 가만히 있자니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그래도 우리 아이가 공부도 그런대로 하고 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