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최고의 경관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우화각을 꼽을 것이다. 능허교 위의 우화각이 육감정(삼청각)과 어우어지는 경관이다. 조계산에서 송광사 터의 앞으로 흘러내리는 개천에 축대를 높이 쌓아 작은 호수처럼 물을 가두고, 이 못(吐魚潭)을 등지고 선 건물의 뒤를 열어 청루를 지었다. 물 가운데 석주를 나란히 세워 두 다리를 힘차게 디뎌 청 마루를 받쳐
극락교 송광사 탐방은 절의 약 400m 앞에 있는 극락교(청량각)에서 시작한다.극락교(청량각)는 송광사의 대단히 중요한 위치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지명을 사자목(獅子項)이라고 한다.이곳에 다리가 놓인 역사를 보자. 조선 영조 6년(1730년. 경술년) 봄 최초로 누각이 없는 석조구름다리를 만들어 이름을 극락교라 하였다. 이후 1853년(철종5년) 7
‘송광사 삼거리’의 원래 지명은 ‘장정지’이다.주암호를 끼고 연결된 국도 18호선과 27호선 신흥마을과 평촌마을 중간 지점에서 송광사로 들어가는 삼거리이다. 장정지는 주암댐이 만들어지고, 수몰된 국도가 새로 나기 전까지는 삼거리가 아니었다. 주암댐이 만들어지고 난 뒤, 낙수마을을 고대, 대곡(한실), 곡천으로 이어지던 국도 15호선과 27호선이 주암호의 중
1. 多花(꽃이 많다)선암사는 우리나라의 다른 절이나 이름난 정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꽃이 많은, 꽃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종류는 물론 그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꽃이 피는 시기도 설한과 인내를 상징하는 600년 홍매가 잔설을 꿰뚫고, 동백과 목련이 봄기운을 재촉하면, 영산홍과 자산홍의 흐드러진 화사가 만화의 시샘을 재촉하여 절이 온통
一無 御間門(어간문이 없고), 二無 柱聯(주련이 없고), 三無 四天王門(사천왕문이 없다.) 무 어간문(無 御間門) ‘선암사 대웅전에는 어간문이 없다’어간문을 사전에서는 방과 방 사이에 달린 문이라 풀이하는데, 절에서는 대웅전의 앞 가운데 칸을 어 칸이라 부른다. 이 문을 어간문이라 하고, 이 문 앞에 서면 부처님의 상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간문을
범바위(虎石) 조계산 범바위는 장군봉의 동쪽으로 소장군봉(중봉)을 향하는 길에서 70~80m 정도 내려가면 있다. 선암사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범바위의 크기는 높이가 5~6m, 아래의 폭이 10m 정도의 크기이지만 가파른 경사에 자리하고 있다. 종전에는 멀리 있는 선암사의 괴목마을에서 바라봐도 장군봉의 왼쪽 줄기에 있는 것처럼 크고
조계산의 등산길 중 하나인 비로암길을 가면 기형의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선암사에서 정상으로 향해 가다 200여 미터 지점인 대각암 삼거리에서 왼쪽 비로암 길을 따라 20여 분 쯤 올라가면 경사진 오솔길 오른편에 첫 번째 기형목이 있고, 이십여 미터 위에 또 기형목이 좌우로 허리를 꺾어 올라간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나무의 특별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에 오르면 정수리에 솟아 있는 바위를 딛고 정상 표석이 동쪽을 향해 우뚝 서있다. 타원형인 흑갈색의 묵석 앞면에는 ‘曺溪山 將軍峰 884m’,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1990. 12. 16 농협승주(군)지부 산악회’라고 새겨져 있다. 도립공원 조계산의 정상에 표석 하나 없는 것을 아쉬워하던 주민들, 특히 산악인의 마음을 대신하여 ‘농협
선암사의 오른쪽 개울 건너편 약 150m지점의 언덕에는 약사여래조각상과 신비한 형상의 약사석이 있다. 선암사의 축구장 안쪽 언덕 약 40m 지점으로 큰절에서 개울을 건넌 대웅전으로부터 동쪽의 옛 독락당 터의 옆이다. 이곳에 약사여래와 약사석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약사여래가 중생들의 온갖 병을 치료해주는 동방을 상징하는 부처이므로 동쪽에 바위가 있는 이곳이
선암사의 무우전과 칠전 사이에 있는 600년 홍매길을 지나 운수암(북암)으로 오르는 후문이 있다. 이 길을 나서면 왼쪽 산비탈에 석축을 쌓은 대지(臺地) 위에 웅장한 모습의 석비 2기가 나란히 거북등을 타고 동쪽을 향해 서 있다. 왼쪽의 큰 비가 1707년(숙종33년)에 세운 ‘선암사 중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고, 오른쪽의 작은 비가 1921
선암사 홍매화 조계산 선암사에는 살아있는 보물이 여럿 있다. 그 중 으뜸이 홍매화이다. 선암사 홍매는 2007년 11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후문 길에 역대 큰스님이 기거하는 ‘무우전’ 담 밖으로 홍매화 열 그루가 나란히 담장에 기대어 서 있다. 이곳의 홍매화는 매년 2월 말이나 3월 첫 주쯤이면 아름다운 붉은 향기를 피워 낸다. 이곳 외에도
선암사 일주문은 절에서 속계와 법계를 구분하는 경계에 세운 첫 번째 정문으로 문(경계)을 들어서는 순간 부처를 향해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주문(一柱門)이란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한 기둥의 문이다. 보통의 건물은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하지만 절의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을 일직선으로 세워 지붕을 얹는 독특한 양식이다. 그러므로 일주가
승선교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 무지개 돌다리로써 예전 선암사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이 다리를 건넜는데, 오욕과 번뇌를 씻고 선계로 들어간다는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승선교를 지나면 나타나는 강선루는 팔작지붕으로 아래는 네 기둥사이를 지나가는 통로이고, 위는(2층) 청마루로 된 중층 문루이다. 이 두 건축물은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건축가의
선암사 목장승은 선암사 입구의 동부도전과 승선교 사이에 있다. 선암사로 향하다 동부도전을 지났을 때 진입로의 왼쪽과 오른쪽에 눈망울과 주먹코가 툭 불거지고, 온통 붉은 색으로 위엄을 갖춘 한 쌍의 장승이 마을 앞 장승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슴을 내밀어 방문객들에게 무엇인가를 일러주려는 듯 서 있다. 이 장승이 세워진 것은 조선 말기의 갑자년(1804년이나
선암사 입구의 옛 주차장과 동부도전의 중간지점 오른쪽 길옆에는 물고기(잉어) 화석 형태가 있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부처님 말씀 중에 불자 제1계인 금 살생의 교훈을 알리기 위해 ‘잉어’가 박혀 화석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순천 괴목에 거주하는 지막기 씨가 전해주는 구전에 따르면 물고기 화석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 선암사에 공부는 뒷
독아지소(용머리소)는 선암사 주차장 매점 뒤편의 옹벽 낭떠러지 아래 있다. 상가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40여 미터 아래에 독아지소가 보인다.바위 계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와 소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소’의 물이 깊고 위험하여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현재 선암사천의 ‘소’들 중에는 물이 가장 깊고
송광사에는 수많은 고승들의 부도가 있다. 송광사 부도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부도를 관리하는 전각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인 ‘보조국사비(높이 394cm, 본 탑 253cm×100cm) 등 다섯 기의 비와 선사들의 흔적인 29기의 부도가 남아 있으며, 구산탑전(구산대종사 사리탑) 바로 뒤편 언덕에도 9기의 부도가 따
인월암(印月庵) 인월암(印月庵)은 송광사의 대웅전 건너편 조계봉에서 동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의 아래에 있다. 조계암골의 왼쪽 아래이다. 큰절(송광사)에서 찾아가려면 천자암(삼밭등)으로 가는 길 입구인 선암사⇔천자암 삼거리(채마밭 입구)에서 약 70m 지점에서 오른쪽 채마밭을 가로질러 산비탈로 접어든 뒤 100m 가량 오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
감로암(甘露庵)감로암은 송광사 제6세 원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창건 시기를 1286~1293년(고려충렬왕 12~19년)으로 추정한다. 그 근거는 원감국사가 송광사(수선사) 주지로 주석(『사지』 238쪽 주지 계보)하다 입적하였고, 1313(충숙왕 원년)년 8월 이곳에 비를 세웠으나 파괴된 지 200년이 지난 1701년에 중건하였다는 내용이 실
천자암(天子庵) 천자암은 송광사의 제9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창건하였다.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쌍향수가 천자암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뽑히기도 했던 쌍향수는 본당 오른쪽 뒤편의 처마에 가지를 드리울 듯 언덕에서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수령이 800년으로 추정된다. 두 아름이 넘는 몸통은 용트림하듯 감아올리고, 가지는 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