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 쪽 친척 중에 당곡떡이 있다. ‘당’자가 붙은 지명은 민속 신앙이나 무속과 연관되어 있기 십상이다. 동네에서 낙안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못 미쳐 당거리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전에 서낭당이 있었다 한다.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숲이 울창하고 길이 험한 이 고개를 넘기 전에, 혹은 무사히 넘고 나서 돌멩이를 던져두었을 것이다. 당곡은 고흥 동강에 있는 마
택호란 농촌에서 결혼한 어른들을 마을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근대화되기 이전에 도시에서도 택호가 쓰였던 것 같다. 택호는 대개 시집온 여자의 친정 동네 이름을 따서 아내는 ‘ㅇㅇ댁’이라 불렀고, 남편은 자연히 그 처가 동네 이름을 따라 ‘ㅇㅇ양반’이 되었다.우리 어머니는 도신떡이라 불렸는데, 어렸을 적에 나는 사람 이름에 웬
바깥 날씨는 한겨울 추위가 무색한데 벌써 입춘이 지났다. 농약과 종자를 함께 파는 가게에서 고추씨를 구입하고 파종할 준비를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200개 들이 고추씨 한 봉지에 2~3만 원 하던 것이 올해는 10만 원짜리까지 나왔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미 고추씨를 모종상에 넣은 지 오래다. 날씨가 포근한 날에는 할머니들이 밭에 나와 풀이 얼마나
지난해 성탄절 무렵에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의 송년 모임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나라 국민 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탓에 한국으로 시집온 필리핀 각시들 또한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 모임에 신부님을 초대했고, 신부님은 나에게 함께 가보자고 요청했던 터였다. 성당 주일학교에 나오는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그들의 자녀이기 때문에
엊그제가 동지인 것 같은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새 낮이 꽤 길어진 듯하다. 우리 집의 한 해 농사가 비로소 마무리 되고, 1월 말 쯤에 고추씨를 모종상에 넣기까지 한 달 정도가 논밭 농사에서 해방되는 농한기다. 올해 동지는 애기동지라고 한다. 동지가 음력으로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기동지라 부르는데 올해는 가을에 윤달이 들어 자연히 애기동지가 되었다. 동
김장용 절임배추를 판매하는 일은 몇 가지 이유로 살얼음 같은 경계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을 동반한다. 우선은 배추가 밭에서 얼지 않은 상태로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그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해발 고도가 200미터에서 400미터 정도 되는 중산간지 혹은 준고랭지여서 고흥이나 낙안 등 인근의 따뜻한 지역에 비해 평균 기온이 낮고
바야흐로 김장철이다. 날씨가 좀 더 추운 웃녘에서는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대부분 김장을 끝내지만 아랫녘에서는 12월 초부터 시작해서 연말에 김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12월 첫 주와 둘째 주에 집중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인이 시장 입구에 생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곁에 화톳불을 피운 채 손님을 기다리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10여 년 전부
홀태라는 농기구가 있었다. 50여 년 전까지 농부들이 나락을 홅는 데 쓰는 기구였다. 커다란 참빗 모양의 쇠로 된 물건에 네 개의 나무 다리를 붙인 것인데, 촘촘한 빗살 사이로 볏단을 한 웅큼 펼쳐 집어넣고 잡아당겨 벼 이삭에서 알곡을 훑어내는 도구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것을 마당에 펼쳐놓고 벼를 홅는 것을 보았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벼
나이가 지긋한 농부들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일을 ‘가실한다’고 말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사계 중에 가을을 가실이라고 불렀으니 그 말은 ‘가을걷이한다’는 뜻의 지역 말이다. 참깨처럼 여름에 수확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알곡은 가을에 수확하기 때문에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 곡식을 수확하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게 된 듯하다. 그러나 보통 가실한다고 하면 주
편리함 때문에 사용 늘어난 비닐농촌 지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대부분 농사의 부산물인 폐비닐이다. 농사에서 비닐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두둑 멀칭이다. 20여 년 전에는 고추밭 두둑 정도에만 비닐을 덮었지만 요새는 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밭작물을 재배하는 데 비닐로 두둑을 덮는다. 비닐 멀칭은 제초 효과 외에도 수분 증발을 막고 지온을 높여주기 때문에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