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활동하는 남길순씨의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이 창비시선 497집으로 출간되었다. 지역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창비시선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일 출판기념을 겸한 북 콘서트에서 작가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열어갔다. 작가는 서른일곱에 순천문학회에서 개설한 문예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일기를 쓰면서 그리움이라는 시적인 마음을 담아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은 중앙문단에서 소외되었다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고향의 정서는 시를 짓는 공간과 시간을 누리게 하는 장점도 있
누가 저리 울어밤새워 하얀 무명 손수건을 걸어 놨을까 사월의 아침 햇살을 타고새 떼들 날아간 푸르른 창공에 순결한 목숨인 양 피어난 목련꽃 송이가슴에 보듬으면 흰 적삼 자락 고운 눈물이 밸까 누가 울다 지쳐저리도 하얗게 타는 마음을 소복소복 풀어 놨을까 접동새 목메어 울고눈이 시리도록 꽃피고 지던 마을빈 나뭇가지 가슴 붉은 이 산하에.
납월 홍매 나 종 영납월 홍매 보러 남녘 금둔사에 갔더니홍매는 피어 한창인데 늦게 핀 동백이 먼저 져서물 위에 길을 내고 가더이다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가고바람 한 줌 봄햇살 한 줄기 남아그리운 것들을 더 그리워하게 하더이다어느 봄날 홍매 보러 낙안 금둔사에 갔더니 동백은 피어 떨어지고슬프고 어린 기러기 한 쌍 먼 하늘길을 날아가더이다흐르는 것은 흘러 산구름 넘어가고대숲 바람 봄향기 한 타래 남아사랑을, 사랑을,더 깊게 사랑하게 하더이다.
는 2015년 광장신문에 투고된 글을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이다.순천은 조선 시대 전통 읍성 도시에서 근대기 도시로 변화한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근대기 변화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선교부 설립, 성곽 훼철, 철도 부설 등 근대기 도시 공간 변화의 흔적이 시가지의 확산과 함께 곳곳에 남아 있어서 근대 도시 공간사의 박물관 같은 도시이다.여기에 낙안 읍성이 조선 시대 성곽 도시의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도시 공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대기 한국의
“채록을 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녹화된 영상에서 그분들의 말을 옮겨 적으며 나는 한순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들을 가슴에 묻고 행여 가슴옷자락 풀며 튀어나올까 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채록을 하는 틈틈 한 문장씩 쓴 것이다” -작가의 말 中 정미경 작가가 소설집 으로 ‘제3회 부마항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964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순천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4년 〈광
황금만능주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 세계를 뒤엎고 있었던 유럽. 양차 대전까지 겹친 시대에 활동한 조르주 루오는 그림으로서 인간성 상실을 항변했다. 루오는 굵고 검은 선으로 인물과 대상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퇴색된 붉은색으로 여백을 메웠다.전남도립미술관이 지난 10월 6일 루오 작품 전시를 시작해 다음 해 1월 29일까지 펼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고 하여 한걸음에 다녀왔다. 전남 방문의 해를 기념한 특별기획전에서 루오의 작품 200여 점과 그의 영향을 받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가 32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를 출간했다. 소설은 2008년 5월 1일 작고한 아버지(정운창, 구례 문척면 출신의 빨치산)의 장례식 3일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로, 일종의 사부곡인 셈이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빨치산”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장례식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읽어 가는 내내 섬진강 강물처럼 끊길 듯 이어지는 눈물은 읽는 이의 몫이다. 신간 장편소설
1991년 봄, 등록금 시위가 한창이던 때 명지대학생 강경대가 백골단에 의해 사망하고 만다. 그로부터 3일 뒤인 4월 29일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해, 그리고 시대의 불감증에 스스로 몸을 던져 항쟁의 도화선이 된 스무 살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 4월 29일, 31년의 세월이 지나 스무 해의 짧은 생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박승희평전」이다.1991년 봄은 잔인했다. 국가폭력에 의해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은 의문사를 당했다. 무려 8명의 청년이 이에 맞서 분신 항거한다. 그러나 이미 80년 5월, 광주학살을 자행
박현정(본명 박임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행복한 시에 물들어』(도서출판 북매니져)가 출간됐다.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순천만, 순천만정원, 아랫장에 품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박 시인은 순천만정원에서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레고(「순천 국가정원만 힐링하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애잔한 짝사랑을 반추한다(「갈대 사랑」). 갖가지 채소와 과일, 바닷고기 떼가 몰려드는 아랫장에서는 옛 향기를 되살린다(「아랫장 시장」). 그는 순천뿐 아니라 여수, 보성, 곡성, 구례, 목포 등 남도 지역의 계절에 따른 표정을 펜 끝에 흘러 보냈다.박 시인은
“근다고, 그러코 허믄 쓴다냐?”낮에 있었던 얽히고설킨 일을 때때로 저녁 밥상에서 퇴근한 아내와 나누곤 했는데, 아들의 뒷말에 어머니는 어느덧 들으시고는 늘 그렇게 타박하곤 하셨다. 아들이 미덥지 못하여 앞세우는 염려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런 마음을 내려놓으시라며 앞은 이렇고 뒤는 저러한 경황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러니, 어머니는 늘 안타까움을 품고 지내셨을 테다.1989년 ‘전교조’ 활동과 관련해 해직된 시절,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치매의 정도가 깊진 않으셨다. 그래도 깜빡깜빡 정신을 놓은 적이 없지 않기
11층 아파트 현관문을 열며 ‘타다’를 호출하려다 접는다. 외곽 쪽 소재 아파트지만 요즘은 1층 출입문 앞에서 불러도 개인택시 또한 금세 오는 듯했다. 제 2기 ‘타다 넥스트’ 기사 모집 직원과의 미팅 시간에 촉박하게 나서는 참이기도 했다. 주변의 500미터 안팎에서 출발하는 까닭에 콜을 하고도 2∼3분, 길게는 4∼5분 정도 기다리기도 한다. 사실, 택시를 타는 일이 잦지 않은 탓에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고객님 부근에 빈 차량이 없습니다’는 문자를 받는 건 짜증나는 일이었다.민규는 승차공유 서비스의 확
2018년 순천대학교10‧19연구소가 설립되고 그해 9월 콜로키움을 통해 순천 유족회 유족 분들을 초빙, 증언채록이 시작되었다. 역사교과서에서 스치듯 만났고 일상에서 자주 들었던 왜곡된 ‘여순사건’과 ‘반란군’이라는 말의 구체적 형상을 그때 처음 만났다.2019년 1월 22일 순천광장신문은 지역 내 현장 활동가들과 2019년 현안과 주요 계획을 공유하는 신년 좌담회를 열었다. 필자는 순천대학교10‧19연구소 연구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좌담회가 끝나고 편집장이었던 서은하 씨와 현재 범국민연대를 이끄는 박소정 씨와 인근에서 차 한 잔
앞으로가 큰일이다. 지금까지야 출판의 기쁨이 컸다고 위안하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허석 순천시장이 취임한 이래 가장 기쁜 일로 ‘도전! 순천시민책 1111’ 행사를 꼽고, 시민이 쓴 책으로만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니 주책없이 헛웃음이 난다.지난해 11월 11일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서는 ‘도전! 순천시민책 1111’ 행사가 열렸다. 이날은 순천시에 주소지를 둔 시민들이 1,163권의 책을 ISBN 등록을 거쳐 동시에 출판한 날이다. 한국기록원에서 ‘단일 기초자치단체 거주 시민 최다 동시 출판’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행사 도중 한국
"도덕은 형식이 없다. 도덕적 내면성은 형식 없이 작동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도덕화 경향이 강할수록 더 불손하다. 이런 형식 없는 도덕에 맞서 아름다운 형식의 윤리를 방어해야 한다." (p.90) 리추얼(ritual)의 사전적 의미는 종교적 의식이나 의례 또는 공동체의 규칙을 뜻합니다. 한병철의 책 은 이러한 종교적, 공동체적인 요소들이 상실된 오늘날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종교’라든지 ‘공동체'와 같은 단어들이 낡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흥
여유도 시간도 없는 사람에게 책 읽으라는 권유는 폭력일 것이다.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을 권하는 것도 어쩌면 폭력적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꼭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무언가를 타인에게 권하기 마련이다. 이 옷은 어때? 라든가, 저 음식은 어때? 라든가, 그 사람은 어때? 등등.... 그런데 소설이 위와 같은 질문의 형식, 또는 질문 그 자체라면 어쩔 것인가? 특정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질문과 온몸으로 대면하는 것이며, 그 질문을 통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만나
퇴근 무렵, 기상예보에 없던 싸락눈 몇 톨이 내렸고 그걸 보고 고민한다. 미혜도 그럴 거라고 여긴다. 첫눈 오면 만나자는 약속, 그래 커피숍 창밖으로 내리는 첫눈에 환호하며 쑥덕이던 만남이 어느덧 6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꺼렸다. 미혜도 나도 결혼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는 개인적, 시대적 요인은 있다. 어쨌거나, 이걸 ‘첫눈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해야 할까?’라고 고민했던 기억이 물론, 그동안 없지 않다. 만난 지 99일째 되는 날, 그때도 이런 싸락눈 몇 알 내리고 흔적도 없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
성은 통상 자연의 본능 같은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성은 저열하고 동물적이기에 고상한 취향을 지닌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철학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동물적이거나 자연적이기는커녕 인간의 '비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인간의 성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다층적인 성적 환상만 놓고 본다면 성은 '음양의 조화'라는 단어로 채색되곤 하는 자연의 균형과 같은, 동양적인 성찰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도 이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상영 난항순천 상영 준비 모임 꾸려져훌쩍 세월은 흘러 50년을 넘겼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태일’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숨어있다. 끼니마다 마주하는 밥과 반찬 속에도, 하루가 멀다 하게 받는 택배 상자 속에도, 편안한 의자에 몸 기대어 받아드는 커피 한 잔 속에도 ‘전태일의 불꽃’이 담겨있다.시간 탓만 하기에는 전태일을 모르는 사람이 참 많다.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를 만든 홍준표 감독은 50년 전의 전태일을 오늘 살아 숨 쉬는 전태일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는 “전태일 열사라는 단어를 버리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제목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게 한다. 드라마 제목으로 차용될 만큼 제목 자체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고, 삼각관계를 구도로 펼쳐지는 세 사람의 사랑과 선택 또한 다양한 의미를 추측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19살에 소설책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단에 등단한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8년 24살에 이 소설을 발표하며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작가로 입지를 굳힌다. 작가가 노년에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면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한 말을 김영하 작가가 동명의 소설로
“여보, 새가 유리창에 계속 부딪히네.”아내가 작업실로 쓰는 별채에 풍경을 환하고 시원스레 보려 벽마다 유리창을 새로 냈는데, 통유리로 된 남쪽 창문에 새가 날아와 자꾸 부딪히곤 했다. “당신이 걸어놓은 저 그림이 창에 비치는 걸까?”아내가 그린 소나무 수묵화가 창문을 통해 보였는지 유리창에 앉으려다 주르르 내려가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는 날아갔다. 같은 새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벌써 여러 날이다. “솔거의 ‘노송도(老松圖)’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죽었다는 전설 같은 전설을 말하는 거야.”“그렇지 않다면 유리창에 앉으려고 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