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텃밭에 소일거리 정도려니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천 평이 넘는 수세미밭이 눈앞에 펼쳐졌다.한 달 전에 힘들게 심은 800여 개의 수세미 모종이 거의 다 죽어버려서 모두 망연자실했다고 한다.농사 초보들의 실패를 만회할 양으로, 다시 심은 어린싹들은 다행히 뿌리를 내리고 넝쿨을 감아올리는 중이었다. 오늘의 농사꾼으로 자원한 동부지역사회연구소(이하 동사연) 회원들은 6월의 뙤약 볕에서 지지대에 끈을 매달고 넝쿨을 연결하느라 허리 필 틈이 없었다.낙안에서도 외진 산중으로, 이 밭에 눈독을 들인 것
순천지역 출신으로 한국 스포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서정권(1912~1984)은 일제강점기 복서 영웅이였다. 열여덟 살이던 1930년 일본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이후 27전 전승으로 전 일본을 석권했다. 권투 시합 대전료를 고향 순천으로 보내 1935년에 건립한 한옥이 원가곡3길 38번지에 위치한 소천재(紹泉齋)다. KBS에서는 영상 한국사 114편 ‘식민지 권투선수 서정권, 세상을 놀라게 하다’를 방영하고 “서정권은 두 주먹으로 세계에 우뚝 선 한국 스포츠의 위대한 역사였다”라고 소개했다. - 편집자 주4월 24일 서정권
순천만은 순천의 자랑이다. 순천시 대대마을에 살며 순천만을 30년 넘게 지켜본 이가 있다. 그는 순천만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린 서근석 선장(62)이다. 그의 진솔한 얘기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순천만의 변화를 보며 드는 생각을 묻자 서 선장은 무거워졌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시대의 흐름은 따라가야겠지만, 순천만이 우리나라 자연 생태 관광의 롤모델이 됐잖아요. 그 못지않게 지역 주민들도 같이 업그레이드됐으면 좋았을 텐데··· 행정만 성과 위주로 앞서가다 보니까 지역 주민들은 외부 사람들에 밀려서 위화감이라든가, 뭐 그런 것도
30년 전인 1991년 5월 18일. 5·18 영령을 추모하고 학생들의 주체적 권리를 확인하는 행사를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는 보성고등학교에서 학생회가 주도하여 열고 있었다. 공식적인 학교 행사인지라 단상에는 교장선생님도 추모하는 검은 깃을 달고 앉아 있었다. 마지막 행사로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에 둥그렇게 모여서 학생회가 써 온 '우리의 결의'를 읽는 시간이었다.그때 학교 건물 동편을 지나 누군가 강렬한 불길을 일으키며 뛰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하고 학생들이 물러나며 통로를 내자 어떤 학생이 원 안쪽으로 들어와서
故 정영섭 동지 서거 1주기를 맞으며정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그의 오십오 년의 짧지 않지만 그리 길지도 않은 이승에서의 생애를 짧게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1966년 구례 토지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그리고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1986년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당시의 젊은 대학생들이 그러하였듯 일찍이 학생 운동에 눈을 뜬 그는 대학의 와이엠시에이 동아리에 적을 두고 학생 운동에 몸을 던진 후, 안 타깝게 숨을 거둘 때까지 끊임없이 투쟁의 대열에서 멀리하지 않았음
관계의 이탈에서 오는 불안감을성찰과 생산의 시간으로가족 중 하나가 확진자가 있던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지난 크리스마스 날 어린 조카에게 케익을 선물하고 나눠 먹은 동생네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확진자 두 사람으로 인해 그들의 회사 사람들과 가족, 이리저리 얽힌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검사를 받고 있었다. 다음 날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 문자를 받았다.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진자와 머문 시간이 10여 분 겹친 탓에 가족 중 라나는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시에서 이런저런 지침과 함께 컵라면 등 약간의
작고 노란 꽃이 앙증맞다. 야생화가 이윤숙 선생님이 두 가지 노란 꽃을 가리키며 고들빼기와 씀바귀를 구분해보라 한다. 꽃은 비슷하고 잎 모양이 다른데, 줄기를 잎이 감싸고 있으면 고들빼기란다. 그러고 보니 잎이 줄기에 달린 모양이 전혀 다르다. 알아야 보인다더니... 된장 양념 들고 산길 걷다 나물 뜯어 무쳐 먹으면 좋겠다.산길을 걸으면 야생화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발길을 붙잡는다. 꽃마리 새별꽃 국수나무 돌나물 돈나물 괴불주머니 개구리자리 등나무꽃.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살포시 피어있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지난 13일 구례 장터의 국회의원 유세장에서는 기후위기대응법 제정을 주장하는 피켓팅이 눈길을 끌었다. 그날 피켓팅을 진행한 구례 기후위기비상행동(이하 구례행동)은 “1월부터 장터에 부스를 열어 장바구니 사용 권장 등 ‘NO WASTE ZONE’만들기 캠페인 활동을 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접촉을 하는 캠페인 활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장터 상인들의 부탁으로 비대면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활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북극 최후의 빙하가 녹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급격히 붕괴되고 1980년도 빙하량의 4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과학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시급한 상황이다.”(2018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김백민 극지연구소 북측해빙예측사업단 책임연구원의 인터뷰) 피부로만 느껴졌던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에도 기후 위기를
박필수 낙안면 이장협의회장에게 ‘낙안면 종합복지센터 건립’에 관한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부지에 선정된 ‘동교저수지(동내 저수지)’는 어떤 곳인가? 현재까지 (낙안면 주민들은) 위험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큰 사고가 있었던 곳은 아니다. 그러나 종합복지센터 부지가 저수지 밑에 있 으므로 천재지변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는 편이다. ▶ 복지센터 시설제안
현대제철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파업을 예고했다.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시정 권고’에도 후속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현대제철.비정규 노동자와 현대제철의 해묵은 갈등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병용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대제철 공장 내의 비정규직 고용의 형태는? 과거에는 현대하이스코였다. 현대제철과 합병돼서 2
임수연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물영화제지만 올해 제7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의 프로그램만큼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작년에 이어 (주)씨네희망에서 주관했던 동물영화제는 ‘Happy Animals - 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22개국 71편을 상영했다. 박정숙 총감독과 박혜미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Q. 끝낸
박발진 편집위원 “워따 말도 마시오잉. 고것이 사람 헐 일이었간디라. 죽지 못혀 사는 가난헌 개 돼지 같은 목숨들이 목구녕에 풀칠하자고 헌 거제. (중략) 하여튼지간에 저 방죽에 쌓인 돌뎅이 하나하나, 흙 한 삽, 한 삽이 다 가난한 조선사람덜 핏방울이고 살덩어린디. 저 중도(中島)방죽, 눈에 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
박발진 편집위원 지난 6월 5일 오전 순천강남여고(교장 정형복)는 순천선혜학교(교장 정미숙) 고등학생 100여 명을 초대하여 ‘제3회 2019. 통합교육 어울림 한마당’ 잔치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지구를 지켜요. Know, No Plastic’를 큰 주제로 하여 체육관에 8개의 부스를 설치하여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박발진 편집위원 이번 호부터 ‘순천의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기획을 통해 지역문화 현장을 일구는 개인과 단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는 개인이나 사회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적인 힘이며, 물질적 풍요가 타락으로 흐르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매체라고 믿는다. 퀴즈 하나! 순천에 매일 클래식 음악
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화재가 확산된 다음날 새벽 3시, 출동 가능한 인력의 3분의 1을 출동시키라는 지시가 순천소방서에도 떨어졌다.서면119안전센터와 승주119안전센터에서 2대의 소방차와 5명의 소방공무원들이 8시간을달려 강원도 산불 진압
[인터뷰] 강원도 산불 지원출동한 순천소방서 서면119안전센터 문금식 팀장 “새벽 3시, 8시간을 달려 강원도에 도착했죠.”4월 4일 저녁 7시쯤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화재가 발생한 저녁인, 4월 5일 새벽 3시, 그날 출동 가능한 인력의 3분의 1을 출
나이 들어가면서 그리운 것은 유년시절의 고향이다. 내 고향은 하루 두 번 여객선이 기착했던 나로도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언덕으로 올라가면 떠나는 여객선이 보였다. 뱃고동 소리를 흉내 내다가 밭도랑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슬프게 울었다. 나중에는 서로 부끄러워 웃다가 빈 바구니만 들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왜 울었을까? 떠나는
세계를 편력하고 돌아오다그는 백남준의 스텝이었다. 스물여덟 살. 대학을 졸업한 나이.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술가들이 꿈꾸는 소호거리에서 고향선배 소개로 고 백남준 선생을 만났다.“교과서에서나 보던 선생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3년 정도 백 선생의 휘하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시다바리’, ‘가방모찌’로 지냈다.”며 겸손하게 너스레를
취재 당일 정오가 가까워져 갈 때 일단의 방문객이 전시관을 찾았다. 대전광역시 교육청 소속의 연수단이었다. 중·고등학교 교감 109 명이 3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김 종권 작가는 핸드마이크를 차고 해설사로 변신했다. 전시관 2 층의 각 전시실로 인솔하며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자료들에 대해 꼼꼼히 설명했다. 독도는 ‘갈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