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전남의 문화적 정체성은 그동안 광주와 목포를 중심으로 하는 전남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정립되어왔다. 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이 지니는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특징의 다양성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가 진행했던 ‘남도문예르네상스’사업은 목포를 중심으로한 전남서부 지역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도
2019년은 순천문화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로 평가받을 것이다. 2019년 9월에 순천문화재단이 정식으로 출범되었기 때문이다. 순천문화재단은 앞으로 순천 문화정책과 사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그동안 광주 전남의 문화적 정체성은 광주와 목포 등 영산강 지역을 중심으로 정립되어왔다. 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지역이 지니고 있는 지리적,
최근 서남대가 폐지되면서 남원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학교부지는 폐허가 되었고 학교주변 원룸건물과 상가들도 붕괴되었다. 이웃 여수시에서도 여수대학교가 전남대학교와 통합된 후 입학정원 규모 축소와 재정투자 축소로 지역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2005년 여수대 입학정원 1,219명이 10년이 지난 뒤 750명으로 38.4% 축소되었다. 10년 동안 여수대학
순천광장신문은 새로운 길목에 서있다. 순천언론협동조합은 지난 5년여 동안 매주 또는 격주로 순천광장신문을 오프라인으로 발행하여 왔다. 프레시안 같은 언론협동조합도 온라인 신문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신문 체제를 유지해왔다는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 6월 20일 188호를 마지막으로 순천광장신문은 새로운 체제를 전면적으
요즈음 대립적인 미국과 중국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새로 부상하는 아테네와 기존 강대국 스파르타 사이에서 발생했다고 서술하면서 생긴 용어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자 하였다. 최근 500년 동안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시장에 대한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세계 최고수준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인구도 200만 명을 넘어 UN이 인정하는 다인종 국가가 되었고, 취학인구도 약 10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국내외 상황은 세계화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세계사교육 강화를 요청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한국과
세계인의 축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8월 22일(월) 17일 동안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 등 총 21개의 메달을 땄다. 양궁, 태권도, 사격, 펜싱, 골프에서는 선전하였지만, 구기 종목과 배드민턴, 유도, 레슬링 등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리우올림픽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가 되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이 38석을 차지해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과 함께 3당 체제를 형성하였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2석을 확보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대구와 부산경남에서 9석을, 강남벨트에서 3석을 확보하면서 지역주의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보수화되고, 중도
2014년에 문창극이라는 국무총리 후보자의 강연 내용이 논란의 불씨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조선말-개화기-식민지-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를 자기만의 방식대로 풀어나갔다. 그런데, 강연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문창극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발생하는 사건을 일종의 ‘숙명론적 사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례로, 문창극은 귀츨라
필자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면서『임종국 평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영향으로『친일문학론』을 썼던 그는 폭로와 고발을 통해 역사의 민낯을 드러낸 재야 사학자였다. 쓸 수 있었던 건 최초의『이상 전집』을 편찬하기 위해 식민지 시기의 자료를 열람하고 정리한 내공 덕택이었다. 제도권의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지만, 친일 연구에서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여기에는 가공할 만한 살상무기를 과시해 제2차 대전 후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는 최후의 군사적 행동이라기보다 소련과의 외교전을 준비하기 위한 최초의 작전이었다. 원폭이 투하될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각각 4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반상회’는 식민지 시기의 ‘애국반’에 기원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애국반은 전시체제기(1937-45) 총동원체제의 구축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1937년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전개되면서 애국반이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애국반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동원을 원활히 하기 위한 목
해방정국(1945-48)은 한국현대사의 원형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이다.『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 송건호가 “8․15가 도대체 어떻게 민족의 정도에서 일탈했고, 그로 말미암아 민중이 어떤 수난을 받게 되었는가를 냉철하게 구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건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해방정국은 한국현대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역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해
파시즘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형태의 반공주의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치 독일은 공산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강력한 국민 통합을 이룩하려고 할 때 참조할 수 있는 극히 한정적인 역사적 경험이었다. 분단국가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최대 과제는 ‘국민’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